[추모제] 눈물 속 치러진 대구지하철참사 100일 추모제

“100일 전 그날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28일 오전9시 53분,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의 그 시각.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대구시민회관 주차장에는 구급차 싸이렌 소리, 경적소리, 다급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사 현장을 담은 TV영상과 함께 흘러나온 소리다. 유가족·시민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100일 추모식의 시작이다.

떠난 이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사람,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사람, 눈을 감고 울음을 삼키는 사람 …. 100일은 눈물이 마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아니, 분노하며 견뎌온 100일은 오히려 더 짙은 눈물을 쏟게 했다.

눈물 마르기엔 너무 짧은 100일

‘참사 100일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희생자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대책위는 추모식을 마련했다. 사회를 맡은 대구YMCA 김진곤 간사가 “불안한 도시-참사 100일의 기억은 안전이 사라진 도시의 참혹한 실상에 대한 되새김입니다. 100일 동안 사라진 참사의 기억에 대한 되새김입니다. 우리의 반성입니다.…”라며 인사말을 했다.

희생자대책위 윤석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이웃들이 또 겪게 해서는 안된다”며,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 책임자 처벌, 시민안전교육장을 중심으로 하는 추모공원 조성이 가신 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대책위 서대현 상임대표와 참사추모전추진위 홍의락 대표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서 대표는 “벌써 100일이다. 지리한 꿈이었으면 하는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밤같은 낮, 낮같은 밤이 그냥 하염없이 지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홍 대표는 “사고가 난 지 백여일이 지난 지금, 행여 잊혀질까 재발방지를 외치며 추모의 마당을 마련한 이 순간에도 우린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 호소

희생자 가족들의 ‘부치지 못한 편지’ 낭독에서는 기자들의 카메라만 부산할 뿐, 식장 분위기는 깊은 슬픔으로 가라앉았다. 동생을 잃은 오진희씨는 “영령이란 그 낯선 단어를 지울 수만 있다면, 지문이 닳을지언정 손에 피가 날지언정 지우고 싶었다”라며 울먹였다. 김한식씨는 그리운 아내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를 읽었다.

노래패 소리타래는 대구지하철참사추모노래 ‘우린 살고 싶네’에 이어 이연재 시민사회단체대책위 상임대표는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이 대표는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며 시민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마지막 헌화 순서에서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들은 영정 앞에 쓰러져 오열하다 가족들의 부축을 받고 분향소를 나오기도 했다.

이 행사를 준비한 희생자대책위 정연주 씨는 ‘참사 100일의 기억’이라는 주제를 내건 이유에 대해 “회상의 의미뿐만 아니라 잊혀 가는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고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합동분향소가 주차장에 차려진 것은 대구시의 의지 없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참사가 나고 70여 일이 지나 차린 합동분향소에 화환이라곤 유족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보내온 것이 전부였다”며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추모식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대구시민회관 2층 소강당에서 참사기록 사진·영상전을 둘러보았다. <오마이뉴스> 김용한 기자와 <경북일보> 기자가 찍은 사진 1백 여점이 전시됐다.

상반신 모양의 검은색 하드보드지에 사진을 붙여 전시했다. 설치를 맡은 김정희씨는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속에 참사의 기억을 간직하자는 뜻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중앙로역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 시사만화전을 관람했다. 참언론 대구시민연대가 주관한 이 전시회에서는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의 작품 40점을 선보였다. 이들은 동호사이트인 ‘뉴스툰'(www.newstoon.net)에서 온라인 전시도 하고 있는데, 사진전과 시사만화전은 6월 15일까지 계속된다.

참사 100일 대구시는 U대회 콘서트 열어

이밖에 대구보건대 디자인계열학생들은 참사 100일을 맞아 대구시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포스터 작품전을 열었다. 또 지역 불교계에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합동분향소에서 위령대제를 올렸다.

탈상을 해야 할 100일째 날에 시신 69구는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유족들은 대구시가 계속 말을 바꾸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분개했다.

희생자대책위 강달원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한 마음으로 추모식을 했다”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이 행사를 보는 마음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편, 참사 100일을 맞는 이날 대구시는 오후 7시 30분 대구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조수미, 김건모, 보아 등 정상급 성악가, 가수들이 출연하는 ‘2003하계U대회 성공기원 콘서트’를 연다.

[유족 오진희씨의 ‘부치지 못한 편지’]——————————————

사랑하는 동생 진영아.

그 참사 이후 너를 찾아 헤매고, 네 사고 소식에 미친 듯이 울며불며 지내온 시간이 벌써 100일이 되었다. 네 영정사진을 옆에 두고 자고 일어나기를 계절이 바뀔 때까지 했건만, 이 눈물은 아직 멈추지 않는다.

영아야 너는 이런 우리 모습을 보고 있니? 어쩌다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슬픈 한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살을 부비며 사랑하던 엄마가 저리도 울분을 토하며 통곡하는데, 저리 흐느끼는데 너는 왜 오질 못하는지, 무심하게 아무 대답도 모습도 보이지 않는 네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매일 웃던 우리 가족이 이젠 매일 운다. 누가 알았을까 25년을 지내오면서 어느 누가 알았을까? 지금도 가만히 눈감으면 18일 아침 너에게 전화 걸던 때가 생각나고, 계속 신호음만 가고 그러다 뉴스에서 나오는 속보에 가슴이 타고 네가 그곳에 그 지하 검은 연기 아래 불길 속에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곳저곳 찾아 헤매던….

‘우리 일이 아닐거야.’ 보면서도 들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아니 부인할 수 있다면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월배기지에서 네 타다남은 유품을 보았어도 오늘까지 우리는 아침만 되면 너를 찾고 밤만 되면 퇴근해 집에 네가 걸어 들어오듯 이곳으로 찾아서 올 것 같아 기다리고 기다렸다.

77일만에 분향소를 차려 너의 영정사진을 올렸을 때, 하늘이 무심한 것 같아 이 세상이 원망스럽고, 이렇게 밖에 너를 둘 수 없는 현실이 원통해서, 비오는 그날에 눈물이라 느껴지는 그 빗속에서 헌화하고 돌아서 나오기까지 울고 또 울었다. 아직도 장례를 못 치러주고 너를 이리 허공에 두고, 우린 죄스런 맘으로 단지 네 사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영아야 너를 망자라고 부르는 그 입들을 치고 싶었다. 영령이란 그 낯선 단어를 지울 수만 있다면, 지문이 닳을지언정 손에 피가 날지언정 지우고 싶었다. 내 동생아, 이게 무슨 일이니? 사망신고를 어떻게 하고 네 그 다정했던 이름에 빨간줄을 어찌 긋겠니?

영아야 이쁜 내 동생아, 왜 이리도 허무하게 일찍 가버렸니? 우리보고 남은 시간 어떻게 살라고, 우리 모두 이제 살길 원치 않고 죽을 날을 더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 어찌 그리 가버렸니. 진영아 돌아올 순 없니? 그 길이 정말 그렇게 멀고 돌아오지 못할 길이니?

너와 내가, 너와 우리가 이젠 이승과 저승이라는 다른 세상에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거니? 영아야 나는 인정 못하겠다. 네가 저승에 있다면 나도 우리도 저승에 살고, 네가 망자라면 우리도 망자로 살고싶다. 보고싶고 보고싶은 내 동생아, 너와 다른 곳에서 너와 우리가 다른 존재로 살길 원치 않는다. 언제까지고 너는 나와 같이 자라온 내 동생이고 우리집 둘째란 사실을 우린 안 잊을 거다. 그러니 다시 볼 그날까지 너도 잊지마라. 다시 볼 그때는 꼭 네가 마중 나와야 한다.

너는 비록 아비규환같은 지옥철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지만, 이제는 그 검은 어둠 안이 아닌 아름답고 행복한 하나님 품에 있길 언니는 정말 바랄 뿐이고 믿을 따름이다. 사랑하는 내 동생 영아야 눈물을 매일 훔치는 엄마를 아빠를 진주를 그리고 철없던 언니를 잊지 말고 거기 하나님 품에서 너도 우릴 위해 기도해 주고 지켜봐 주기를 빈다. 다시 너를 만날 그날을 손꼽으며 이만 쓴다. 땅위에서 하늘에 있는 이쁜 내 동생 진영이에게 언니가…

오마이뉴스 김광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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