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시의회 입법권 농락하는 박정희기념조례, 부결하라

대구참여연대는 대구시의 박정희 광장 조성, 동상 건립 등 박정희 우상화 사업 자체를 반대한다. 더불어 홍준표 시장이 근거도 없고, 법안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한 부실 조례로 대구시의회의 입법권을 농락하고 있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구시의회의 부결을 촉구한다.

1. ‘전직대통령예우법은 국가사무에 대한 규정으로 조례 제정의 근거가 안 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대통령예우법)’과 시행령은 연금, 묘지, 경호, 기념사업 등 국가의 사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한 규정은 없다. 보통 법률에 따른 지자체의 역할이 필요할 때 ‘000에 관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다’는 조항을 두는 데 이 법에는 없다.

홍 시장의 논리대로면 국사사무와 자치사무의 구분이 없어지고, 대한민국의 법치행정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권한도 예산도 없는 지자체가 국가사무로 규정한 모든 법률을 다 집행하거나 그렇지 못할 때는 그 자체로 법을 위반하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을 잘 아는’ 홍준표 시장이 국가사무를 규정한 법률을 자치사무를 위한 조례 제정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뱉으면 무조건 한다’는 과욕,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오만이 부른 자가당착이다.

2. ‘박정희기념조례는 법의 기본원칙, 조례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한 부실 덩어리다.

1) 박정희기념조례는 ‘대구시와 특유한 관련성’이 없다.

‘자치에 관한 규정’은 국가 차원에서 일반성을 갖고 행해져야 할 사무가 아니라 해당 지자체와 특유한 관련성이 있는 사무를 규율하기 위한 규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조례는 대구시와 특유한 관련성이 없다. 호남의 김대중 기념사업은 그 지역과 명확한 관련성이 있고, 박정희의 고향이 구미라는 점에서 구미에 박정희 기념관을 두는 것도 관련성이 있다.

물론 관련성이 있다고 하여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조례를 제정해서도 안 되지만 관련성이 없는데도 시민 혈세를 쓰는 조례를 만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럼에도 홍 시장이 무리하게 이 조례를 추진하는 것은 대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고 있고, 보수의 성지라 불리기 때문에 그 정치적 효과를 누리기 위한 책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2) 박정희기념조례는 법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를 갖추지 못한 부실 조례다.

이 조례는 조문이 단 3개에 A4 반장도 안 된다. 물론 내용이 매우 단순한 경우 간혹 있긴 하다. 그러나 올 한해만 14.5억원의 세금이 쓰이고,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쓰는 근거가 되는 조례가 이렇게 부실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조례의 목적은 법의 기본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을 뿐, 기념사업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나 목적 및 내용 등 모두 불명확하다. 아무런 통제규준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이 조례안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시장의 자의적인 권한 행사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례 제2조(기념사업 등)의 범위와 내용은 제1조(목적)를 초월하고 있다. 사업내용 조항이 단 두 개뿐이고, ‘그 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이라는 조항을 두고 있다. 기념사업 조항을 ‘기념사업’과 ‘관련 행사’로만 규정한 것도 동어반복인데다 기념사업이 어떤 것인지 명확성이 전혀 없어 홍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체계 적합성 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3. 홍준표 시장이 민망한 수준의 조례로 대구시의회의 입법권을 농락하고 있다.

조례는 지방의회가 제정하는 지방의 법이다. 최소한의 법 원칙을 지켜야 하고, 조례의 기본 요건은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 조례는 법 전문가 아니 시민의 일반상식으로 봐도 근거도 없고, 내용도 민망한 수준이다. 국사사무를 규정한 법률을 자치사무의 근거로 제시한 것도 문제인 데 기본적 법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고, 그 내용도 조악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 조례는 공공의 목적성이 없다. 박정희를 왜 대구가 기념하는지, 무엇을 기념하는지, 기념사업을 통해 어떤 공공적 목적을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시장이 원하면, ’박정희기념’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치인 또는 특정 단체의 사적인 목적으로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홍 시장이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이런 부실한 조례를 발의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법 전문가인 홍 시장과 규정을 근거로 일한다는 공무원들이 국가사무를 규정하는 법률을 근거로 대고, 내용도 부실한 조례를 성안했다니 그 무능함도 놀랍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뱉은 즉시 의회도 시민도 무시하는 홍 시장의 폭주,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홍 시장이 대구 시정과 의정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며, 대구시의원들을 법리에 무지한 사람들로 여기는 것이다.

4. 대구시의회는 입법부의 자존을 걸고 이 조례 부결해야 마땅하다.

이 조례는 애초부터 필요가 없지만 이런 엉터리 조례를 발의한 것은 대구 시민과 시민을 대표을 대표하는 의회의 입법권을 농락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구시의회는 이 조례를 부결해야 마땅하다. 박정희가 기념해야 할 사람인지, 굳이 대구에서 기념해야 하는지, 이 조례가 필요한지부터 원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대구시의회가 이번에도 또 홍 시장의 거수기를 자처한다면 시의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