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앞산 상수리나무가 이미 아프다

술은, 확실히 사람의 감흥을 돋구게 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 정도까지가 사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술의 마력이고- 물론 그것조차도 나의 감정이입이겠지만- 그로 인한 다소의 흥분과 감상은 이성의 메마른 개입을 뛰어 넘어 사물의 본질을 보다 가까이 느끼게도 하는 법이다. 앞산을 답사할 때 나는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술이 덜 깬 상태’란 술을 적당히 한 상태와 유사한 감흥을 남겨 두고 있나 보다. 그렇게 앞산에 올라, 상수리나무 숲에서 나는 울 뻔 했다.

김지하씨의 역사에 대한 오만과 현실에 대한 주관적 왜곡은 달리 비판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에게서 배울 것이 참 많다. 지금은 그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김지하씨가 율려사상을 전개하면서 창조의 원천이 되는 ‘흰 그늘’을 언급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뜻을 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앞산 상수리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빛과 그 잎새의 흔들림이 만들어 내는 밝은 그늘을 보며 문득 ‘아 이것이구나’하는 찰나적 느낌, 그 여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생명이 어둠과 빛을 품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그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상태, ‘흰 그늘’을 본 것이다.

그들이 이 흰 그늘을 파괴하려 하니 상수리나무가 이미 아파하고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정체모를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더 무엇을 말할까, 이것이 나의 앞산 답사기의 전부인 것을… 지율스님이 도룡뇽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하나로 하였을 때 달려가 연대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이, 그 목숨을 방치했던 이들과 방치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왜 재연되어야 한단 말인가. 모든 곳에서…

4차 순환도로 건설계획이 회자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었다면 이미부터 감지하고 달려들었어야 할 일이었다. 총연장 65KM, 예산 3조원. 그 길이 가는 곳마다 앞산의 심장이 뚫리고 팔공산이 신음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무모한 계획이다. 누가, 어떤 필요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가.

현실성 없는 희망사항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 외곽을 연결하는 도로와 국도가 도심을 통과하는 교통체계로 인해 도심 교통체증이 심각하고, 도시의 지속적인 팽창과 발전으로 외곽지역에 대규모 공단과 택지가 조성되므로 교통체증은 더욱 증가될 것이다. 이로 인한 불편과 비용을 해소하기 위해 외곽에 도로를 내서 교통의 도심 집중도를 분산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면 타당해 보이는 이들의 논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팽창과 가속의 경제학’이다. 사람과 자원을 도시로 집중시키고, 도시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이에 따른 교통과 물류의 흐름을 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왜, 모든 것이 규모가 커야하고 속도가 빨라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차치하고라도, 이들의 계획은 현실성이 없으며 희망사항일 뿐이다.

4차 순환도로의 서쪽 축인 성서공단-지천-읍내동 구간과 동쪽 축인 서변동-도동-안심국도는 거주 인구가 거의 없는 곳을 산을 가로질러 만드는 것으로, 이를 만들어야 할 현실적 필요 즉 교통수요가 없다. 미래의 교통수요는 어떨까. 통계청이나 대구시에서나 2015년까지 대구시 인구가 현재 규모를 넘지 못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 또한 타당성이 없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택지를 조성하고 공단을 만들어서 강제로 이주시키겠다는 주관적 욕심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남는 문제는 오직 한 가지, 당면한 도심교통체증을 해소한다는 논리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를 해소하는 방안이 왜 도로를 더 만드는 것 밖에 없을까. 시내버스를 개혁하고 대중교통을 우선하는 교통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도시교통정책의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아울러 지금도 대구시는 전국 7대 도시 중 자가용 수송분담율이 최고이고, 통행속도도 제일 빠르다는 점도 염두에 둘 일이다.

상인- 범물 구간은 어떤가. 현재 앞산순환도로의 정체를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앞산순환도로의 정체는 순환도로의 끝 지점, 신천대로와 만나는 지점의 병목현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지금도 앞산순환도로는 대구 외곽도로 16곳중 유료도로인 범안로와 호국로를 제외하고는 통행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참에 병목구간의 정체를 해소하는 대덕맨션-상동교 구간을 공학적으로 잘 설계하면 앞산순환도로의 통행속도는 대폭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앞산에 터널을 뚫어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고속도로의 3배에 이르는 이용료를 시민들에게 부담시키겠다는 뻔뻔함은 또 어떤가.

입만떼면 돈 타령에, 지역경제를 걱정하는 그들의 경제학

입만 떼면 돈 타령에, 지역경제를 걱정하는 그들의 경제학으로 보면 어떨까. 현대의 기계화된 공사방식으로는 고용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또 사업자의 대부분이 타지역업체로 퍼부은 돈이 딴 데로 빠져 나간다. 전국에서 부채가 가장 많고, 가장 가난한 대구시가 그래서 독자적 재정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구시가 기획할 일이 아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민자사업으로 한단다. 그래도 사업자의 투자비는 시에서 보전해줘야 하고, 시민들이 고액의 사용료를 부담해야 하므로 결론은 마찬가지다. 참으로 돈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돈이 아깝다. 그 돈으로 첨단적 시내버스시스템을 갖추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남는 돈으로 서민주택을 짓고, 아동보육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의 생활을 보호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가능한 상상들이 단지 희망에 불과한 현실이 또 가슴 아프다.

한편 대구시는 기회만 있으면 ‘대중교통체계개편’을 역점시책이라 떠들면서, 준공영제를 도입하고 대중교통전용지구 설치, 버스노선개편 등 시내버스 개혁을 위한 수많은 정책과제들은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4차순환도로 건설계획은 대구시의 교통철학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는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대중교통을 활성화시켜 자동차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은 매우 부분적이고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승용차 위주의 교통정책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꾸만 도로를 내고, 자동차가 늘고, 교통이 지체되고, 또 도로를 내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정책의 일대 혁신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지점이다.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가?

그러면 결국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돈이 되는 일이면 눈을 밝히고 달려드는 것은 자본의 심리다. 이들이 개발논리에 물든 지방정부의 도로, 건설부서의 돈을 탐내는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사업을 기획하고 대구시가 놀아나는 것이다. 투자비가 보전되고 적정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데 달려들지 않을 사업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로 인해 온 국토가 파헤쳐 지고 있다. 이를 일컬어 혹자는 ‘제2의 개발시대’, ‘토건국가’라 부른다. 대구신들 다를 것인가. 개발시대와 토건정부의 첨단을 주행하고 있는 것이 대구시다.

대구시의 시정 슬로건을 요약하면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 ‘환경도시 대구’다. 그러나 대구시의 정책방향은 오직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의 깃발만 휘날리고 있다. 일하기 좋은 도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의 비젼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의 도시가 파괴되고, 삶이 황폐화 될 것이다. 우리가 도전해야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내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가 있다. 늦었어도 단호하게 시작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글_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대중교통담당

※ 이글은 대구환경운동연합 5월호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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