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독도침략, 민족주의

동북공정, 독도침략, 민족주의

   우리의 영토와 역사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일방적 태도와 맞물려 민족주의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직접적 계기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략’이라는 두 사건이다.  
   2004년 초에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민족주의의 열풍이 휘몰아쳤다. 고구려가 한국의 한 뿌리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중국은 이런 정설을 완전히 부인하는 국가사업을 벌이게 된 것일까? 그 바탕에는 중국의 민족적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한민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민족은 전체 인구의 93%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토는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환경문제는 다름아닌 인구문제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실체는 한족의 인구문제이다. 이 때문에 한족은 전통적인 거주지역인 ‘중원지역’을 벗어나서 ‘새외지역’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마오쩌뚱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 티벳의 인구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60%를 넘는다.

   중국의 지배민족인 한족은 이러한 한족의 확산을 ‘중화민족’이라는 생뚱맞은 엉터리 개념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한민족과 소수민족의 구분은 의미가 없고 모두가 중국의 영토 안에 함께 사는 ‘중화민족’이라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중화민족’의 논리를 전개한 결과로, 특수하게는 간도를 둘러싼 한중 영토분쟁에 대비하려는 의도로 추진되고 있다. 요컨대 ‘동북공정’의 핵심은 역사상 가장 거대하게 확장되어 있는 현재의 중국 영토를 지배민족인 한족이 최대한 안정적으로 장악하고 유지하려는 ‘한족 패권주의’의 정치적 산물이다.
   2005년 초에 일본이 마침내 ‘독도침략’을 감행함으로써 격렬한 반일 민족주의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우리의 역사적 ‘적’이다. 우리의 역사상 최악의 파괴는 고려 때 몽고군의 침략과 조선 때 일본군의 침략으로 저질러졌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불사른 경복궁은 그 뒤 280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흥선대원군에 의해 겨우 복원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불과 50년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근정전 앞에 거대한 총독부 청사를 세웠던 것이다.

   ‘독도침략’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잔재이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결코 척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그 뿌리는 전후에 열린 ‘전범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잘 알다시피 ‘일본의 히틀러’라고 할 수 있는 히로히토 천황은 이 재판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 중에서 일부만이 전범으로 처벌받았는데, 그 중에는 부당하게 사형을 받은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부하들은 살아남았으며, 그 중에서 일급전범인 기시 노스스케는 수상까지 되었고, 악명높은 ‘731부대’를 창설하고 통솔한 이시이 시로는 동경대에서 학장까지 지냈다. 이 때문에 대다수 일본인이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주적 외피를 둘러쓴 채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게 억눌리고 일본에게 지배당했던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동북공정’과 ‘독도침략’에 맞서서 민족주의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족주의가 야만일 수도 있지만, 어설픈 탈민족주의도 야만일 수 있다. ‘제국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고, 따라서 ‘민족해방’의 과제가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의 위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최근 동북아에서 나타난 새로운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한국의 민족주의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제국주의는 평화와 민주의 가장 큰 적이다. 이런 점에서 ‘동북공정’과 ‘독도침략’은 극히 우려할만한 징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면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정학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을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동북아 공동체’에 관한 논의가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자면, 최근 동북아에서 나타난 새로운 대립과 갈등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그 잘못을 낳은 구조의 적절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역사를 무시한 사람들은 ‘역사의 복수’를 받게 마련이다. 이른바 ‘과거사 청산’은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현재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이다. ‘전범재판’의 결과는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독일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북아 민주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저 야만의 제국주의 시대가 되살아나지 않도록, 또한 민족주의가 야만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동북아 민주주의’의 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동북아 시민사회’의 연대는 이미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는 시민사회가 이제 겨우 태어나려 하고 있고, 일본의 시민사회는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를 타개할 정치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동북아 민주주의’를 위해 막중한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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