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의 벽을 넘어, 그들도 우리처럼

* 아프리카계 흑인 :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 사회적 환경 탓에 실재로 범죄율이 높긴 한다.
* 아랍인 : 미국인과 미국사회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 실재로 직간접적인 피해당사자임.
* 라틴 아메리카 백인 : 피부색과 외모의 차별성이 없음에도 ‘진정한 미국인’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이방인. 북아메리카 백인 대비 경제적 약자.
* 중국인 : 인신매매 대상, ‘쿨리’로 상징되는 지저분한 인종.
* 한국인 : 여전히…그악스러운 경제적인 동물.
미국사회의 인종갈등을 그린 영화 ‘크래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종들의 캐리커쳐다. ‘인종의 용광로 melting pot’ 라 불리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하나로 섞이고 융해된 인간이 아닌 개별적 인종들이 도드라진다. 인종갈등과 차별을 이렇게 객관화 시켜 놓고 보면, 차이를 차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폭력성에 진저리가 쳐진다. 고해성사하듯 상처를 까발리는 미국영화를 보고 있자니 ’단일민족국가‘를 자부하는 내나라 내겨레의 현실이 뒤통수를 때린다. 우리는 ’그들‘을 차별하지 않았던가 ?

단일 민족 안의 ‘혼혈’이라는 굴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바,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이다. 단일민족의 신화는 자신이 태어나고 속해 있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해줄 수도 있지만 다른 문화와 인종에 대한 배타성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단일문화, 단일언어, 나아가 단일혈통이라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민족관은 종종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양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에 집착하던 독일의 나치가 유대민족에게 가한 만행이나, 지금의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자행하고 있는 가공할만한 수준의 폭력도 결국 민족적 선민의식과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순혈주의’의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혼혈인’이다. 물론 한국전쟁의 와중에 기지촌을 중심으로 태어나기 시작한 ‘혼혈 1세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혼혈인’을 백안시하는 풍조로 고착된 경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외국인과 한국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나마 ‘혼혈인’도 아닌 ‘튀기’ ‘깜둥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자라야 했으니 말이다. 냉정하게 따져서 5000 여년 역사동안 무려 500여회에 달하는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으니 ‘순혈’이 유지 보존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단일하며 순수한 혈통’이란 족보 속에서만 가능한 허구일지도 모른다. 피부색과 생김새와 출생이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에 대한 폭력적인 차별을 서슴지 않는 것에 대해, 모르긴 몰라도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도 통탄 하실 게다.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인내천’, 즉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고매한 말씀이 아니었던가. 어느 인간인들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워드, 성공한 한국인 ? 성공한 혼혈인 ?

차별을 극복하고 성공한 혼혈인, 효로 대표되는 한국적 가치를 지닌 미국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반쪽의 한국인… …기타 등등. 미국 슈퍼볼 영웅인 하인즈 워드를 따라다니는 현란한 수식어다. 시쳇말로 ‘땡…워드 뉴스’, 정말 신물 났지만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한다. 하인즈 워드라는 미국시민권자 한사람이 한국 사회에 던진 파장은 작지 않았으며, ‘그 한 사람’이 ‘많은 우리’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오죽하면 워싱턴 포스터가 “워드의 방한이 한국사회에 값진 성찰의 기회를 줬다”고 거드름을 피웠겠냐 말이다. 워드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혼혈인 차별문제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켰으며, 지금껏 음지에 가려져있던 문제를 광범위한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었다. 근데 ‘워드’를 보고 있자면 스멀스멀 의문이 든다. 왜 워드인가 ? 하인즈 워드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내는 이유는 그가 성공한 ‘혼혈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공한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워드의 팔뚝에 새겨져 있는 한글이름에 언론이 주목하고 여론이 감동하는 순간, 그는 혼혈인이기 앞서 자랑스런 한국인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사람 중에 ‘한국계’의 순도(?)가 단 1%만 있어도 호들갑을 떠는 것이 우리나라 언론이며 여론이다. 우리민족 밖의 약자에 관심을 가지자고 외치면서 우리민족 안의 강자에 열광하는 그 이율배반이라니 !

‘살색 skin color’ 은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불행과 함께 생겨난 혼혈 1세대를 비롯하여, 산업인력으로 들어온 동남아시아인들 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이라 불리는 혼혈 2세대, 그리고 이민으로 인한 국제결혼을 통한 혼혈 3 세대까지, 혼혈인들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2020년이면 대략 1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혼혈인들의 삶은 비참하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우가 전체 혼혈인의 42%에 달한다고 하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방관과 무관심을 가장한 익명의 가해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언젠가부터 ‘살색 skin color’이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워드 방한도중에 정치권과 행정당국은 혼혈인 문제에 대한 제도적 방안을 앞 다퉈 내놓으며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제도개선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한’ 미봉책으로 남기 십상이다.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단일민족을 확인하는 유일한 ‘살색’이 존재하고, 그 이외의 피부색은 ‘이방인’으로 내몰린다. 편협한 잣대로 ‘국민’을 규정하는 우리들 속의 그 몰상식이 사라져야, 진정 ‘그들도 우리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글. 허경주 (편집위원 kyongju-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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