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느리고 복잡하다? 확 바꿔보자!

차장누나와 버스의 역사에 관한 추억

대구시내버스 역사 50년, 지금은 뜨거운 감자로 전락해 버린 시내버스도 한 때는 각광 받는 산업이자 대중적 교통수단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때가 있었다. 7,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하는 시내버스를 보면서 예의 차장누나의 우렁찬 ‘오라이’ 소리와 콩나물시루같이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예쁜 여학생을 향해 돌진하던 아련한 추억도 떠올릴 것이다. 이런 시내버스가 사양화되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 때로는 동생 같고, 누이 같았던 인정 많은 차장누나들이 사라진 뒤부터지만,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나마 서민 교통수단으로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시내버스가 몰락해 온 역사는 자동차산업이 발전해 온 역사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자동차 위주의 고로공급 정책을 지속해 온 지난 20년 사이 시내버스의 수송분담율은 90년대 55%대에서 2003년 37%로 감소되었다. 그 결과 업체들의 만성적자와 서비스 악화의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버스산업은 극단의 위기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함흥차사, 개문발차….시내버스, 이것이 불만이다.

버스개혁의 요체는 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현실적 불만을 해소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내버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들어 보자.
“함흥차사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 도착할지 알 수가 없어요. 10분은 기본이고 30분을 기다려도 안 와요. 기다리는 것도 짜증나지만 출근이나 수업, 약속 시간에 늦을 땐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에요.”- 하나, 정시성의 부재이다.
“기사들이 너무 불친절합니다. 개문발차(문열자마자 출발하는 것)에 노약자들이 넘어지기 십상이고, 물어봐도 퉁명스럽고, 심지어 음주운전까지….”- 둘, 운전기사의 불친절이다.
“버스가 너무 느려요. 도심을 지나다 보니 심하게 막히고, 버스들끼리 서로 홍쳐서 우왕좌왕하고…. 약속시간 늦을까 조마조마 하다가 중간에 내려서 택시 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예요.”- 셋, 도심중복도와 신속성의 문제이다.
“버스타면 정말 피곤합니다. 좌회전 했다가 우회전 했다가, 갑자기 섰다가 갑자기 출발하지를 않나…. 서로 밀치고 넘어지고 말이 아닙니다. 버스한번 타면 하루 체력이 다 소진되는 느낌입니다.”- 넷, 노선 굴곡도와 난폭운전의 문제이다.
          
시내버스 개혁, 이렇게 하자.

얼마전 저상버스가 운행을 시작했을 때 시민들의 환호가 정말 대단했다. 시내버스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다. 앞서 열거한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시내버스를 제대로 개혁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다 체계적으로 요약하면 시내버스가 승용차나 지하철처럼 정시성, 신속성, 안전성, 쾌적성, 편리성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버스의 이용율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첫째, 버스우선의 교통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주 간선 노선에 중앙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하고 버스우선의 신호체계를 구축하는 등 BRT(간선급행버스)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굴절버스, 저상버스 등 신 차량을 도입하고, 현재의 버스전용차로제를 더욱 확대,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내버스가 대량의 인원을, 신속, 정확,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미 브라질의 꾸리지바에서 모범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서울시 등에서도 일부 시행하여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둘째, 저렴하고 편리하게 환승하도록 해야 한다. 버스요금을 이용자에게만 부담시켜서는 안된다. 승용차 이용자의 편리를 위한 도로공급에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자해 온 것을 생각하면, 버스 이용자를 위한 공공적 투자를 외면할 까닭이 없다. 버스와 버스, 버스와 지하철 간의 편리한 환승을 위해 환승터미널, 환승주차장 등을 구축하고 환승요금을 무료화해야 한다.

셋째, 교통카드 이용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버스운행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버스의 출발, 도착 시간의 정확한 안내, 배차간격 미준수 등 불법운행을 실시간 체크 , 운송인원수와 운송수입금을 정확히 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정기권 할인, 카드 무료보급 등을 통해 교통카드의 이용율을 90%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넷째, 버스노선의 직선화, 도심중복도 개선을 통해 운행시간 단축 및 속도를 향상시키는 한편 운행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대부분이 노선이 도심을 통과하다보니 중복운행이 많고, 도심정체가 발생, 속도가 지체되고 비용이 증대되는 것이다.

다섯째, 버스업체의 구조조정, 경영혁신이다. 현재 29개 업체, 평균보유대수 60대를 150~ 200대 규모, 10여개 업체로 조정함으로써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버스산업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준공영제를 도입한다면 엄청난 세금이 낭비될 것이 뻔하다. 표준운송원가와 표준경영모델을 정립, 이에 미치지 못하는 업체들을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시내버스는 낡고 복잡하고 느리고 피곤하고 불친절 한 것’이라는 우리의 연상이 ‘빠르고 편리하고 쾌적하고 친절한 교통수단’이라는 희망으로 바뀌는 것이 불가능할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버스개혁 한다면서 자동차 잘 다니라고 4차 순환도로 건설을 밀어붙이고, 수송분담율 3.8%밖에 안되는 지하철을 또 짓겠다고 억지부리는 대구시의 교통정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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