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개발만능의 시대를 경계하며

태초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조물주가 보기에도 참 좋은 세상을 만든 후 조물주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으니, 바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던져놓은 것이다. 가뜩이나 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것을 큰 벼슬로 여기던 인간은 조물주의 허락 아닌 허락까지 받아 놓고 보니 세상천지에 꺼릴게 없었나 보다. ‘천상천하 유아독종’을 자처하며 육해공을 막론하고 모든 것을 인간의 손에 넣고 주무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일단 인간의 손이 닿은 곳은 개발의 역사, 야만의 역사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물론 조물주가 언급한 ‘다스리라’는 ‘니 맘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의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라다 (Radah)’, 즉 경작하고 섬기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어쨌든 조물주의 어휘선택이 신중하지 못한 탓인지 인간의 무지와 교만 탓인지, 창세 이후 지구는 끊임없이 인간의 손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대한민국은 개발 공화국

“인간의 손때보다 더 더러운 것이 없다더니……” 유홍준 씨는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좁은 국토를 집어삼키고 있는 개발의 흔적을 이렇게 한탄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모텔과 가든(?)이 늘어서서 돈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문화재 답사가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하지만 마음 좀 넉넉하게 먹으면 이 정도야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문제는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개발이 자연생태계에 정면도전장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던 70년대에는 개발이 발전의 동의어로 여겨졌으며, 경제성장이라는 명분하나로 개발의 모든 후폭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개발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개발 계획은 때로는 ‘뜨거운 감자’로 혹은 ‘허황된 꿈’으로 전락하고 있다. 갯벌을 농토로 만들고 인공호수를 조성하겠다던 시화호 간척사업은 결국 비옥한 갯벌을 오폐수 가득한 죽은 호수로 전락시켜 버렸으며,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제2의 시화호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한 스님의 극단적인 단식으로 더 화제가 됐던 천성산 터널공사는 환경과 개발이 양립하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여기 대구의 앞산도 위기상황이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인동과 범물동을 잇는 앞산관통도로공사가 강행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을 메워서 농지와 공단을 조성하고 산을 뚫어서 도로를 닦는 것, 집이 좁다고 집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와 기둥을 들어내는 꼴이다.

직강화, 전 국토의 하수구화

대구도심을 흐르는 신천은 이름만 생태하천일 뿐 실상은 인위적 시설로 포장된 인공하천이다. 이 신천에 자연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복원된 적이 있었으니, 바로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신천제방이 무너졌을 때였다. 콘크리트구조물이 떠내려간 자리에 모래와 자갈이 쌓이자 곧 수생식물이 무리지어 자라기 시작했으며 이 주위에는 물고기와 새들이 모여들었다. 물론 또 다시 콘크리트로 덧칠되는 수해복구과정에서 신천은 생태계의 자연복원력을 잃어 버렸지만 말이다.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개발능력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심 속 하천뿐 만 아니라 한적한 시골마을의 멀쩡한 하천들도 시멘트로 포장되고 있기는 매 일반이다.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고즈넉한 시골풍경은 이제 시인의 시에서나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도 거창한 ‘직강화 사업’, 말 그대로 구불구불 물길 따라 생긴 하천을 반듯하게 닦아서 물이 논스톱 직선 코스로 좍좍 흐르게 한다는 것이다. 흙과 풀과 나무를 걷어내고 시멘트 발라놓은 하천에 식물이 뿌리 내릴 리 만무하고, 식물이 없으면 곤충이, 곤충이 없으면 물고기도 새도 없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생태적 상식을 무시한 셈인데, 백번 양보해서 생태적환경보다 치수적인 기능을 중요시 했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흙과 풀뿌리 속으로 흡수될 여지없이 마구잡이 흘러내린 물이 하구 어딘가에서 대형 물난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혈관처럼 미세하게 퍼져서 국토의 젖줄 역할을 하는 실개천과 하천이 이제 직강하는 하수구 꼴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도로건설로 국토가 동강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 국토의 하수구화가 멀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꿈꾸며

인간은 자연을 개발할 수는 있지만 자연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1991년 미국에서 실험한 ‘인공지구 만들기 프로젝트’인 ‘바이오스피어 2’의 참담한 실패가 그 교훈이 될 수 있다. 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인공지구’는, 지구생태계를 그대로 본뜬 설계에도 불구하고 8명의 인간이 숨 쉴 충분한 산소조차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개발을 숭배하는 인류문명이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무기력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개발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하는 개발, 이름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과 환경보전의 딜레마에 빠진 21세기의 인간들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필요성을 선무당이 주문 외우듯이 외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개발 사업들은 늘 ‘지속가능한 문제’들만 주구장창 남기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그 수많은 혜택을 인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자연에 대한 약탈과 무분별한 개발을 묵인한다면 결국 인류문명의 지속가능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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