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6월의 기억

1. 어제 하루일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20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며 예의바른 자세는 더더욱 아니다. 대개 그런 요구는 자백을 이끌어내 혐의를 입증하려는 의도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작화된 기억(confabulation)을 요구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그래서 ‘정치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2. 머릿속의 기억도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심리적 상태, 지나온 경험, 때로 정치적 긴박에서 내 삶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은 선택적이고, 간헐적이다. 내 머릿속 과거사의 파편들 역시, 중간 중간 망실되어 있고, 더러 억지로 이어붙이기를 한 것도 있다. 작은 것이 부풀려져 있기도 하고 큰 것이 ‘저 너머’로 사라져 없기도 하다. 물론 그 속에 어떤 파편은 매우 노골적이고 놀라우리만치 선명하게 남아 있다.

3.내 기억속의 1987년, 그해 6월은 따가운 햇살아래 포도(鋪道)를 질주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6. 10대회, 6. 26. 평화대행진, 6. 29선언과 같은 나머지 것들은 그 속의 에피소드나 인터메조로 남아 있다.

3-1. 항상 시위대열의 3번째 줄에 선다는 84학번 선배가 있었다. 선두에 서면 잡혀갈 위험이 커서 안되고, 중간이 있으면 백골단의 공격 낌새를 알 수 없어 재빨리 도망갈 수 없고, 뒷줄에 끼이면 욕먹으니 안되고… .

3-2. 학교 앞 슈퍼 아저씨는 항상 빈 소주병 박스를 가게 밖에 내놓고 계셨다. 우리는 슬금슬금 가서 훔쳐와 화염병을 만들었다. 어느 날 아저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저씨는 빈 소주병 박스를 가게에서 조금 더 멀찍이 가져다 두는 것으로 소박한 ‘알리바이’를 완성했다.

3-3. 그 둘은 연애를 했다. 숨어서 했다. 밤늦게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학생회 커튼을 뜯어 서로를 감싸며 무슨 얘기를 밤새 그렇게 했다.

3-4. 그 때 시위로 감옥에 간 한 대학생은 감옥면회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사의 비밀을 듣기도 했다. 전쟁 전후 억울하게 학살당한 오빠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는 철창너머 자식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너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3-5. 어떤 전경이 있었다. 시위 진압을 나가면 가로에 구경하는 시민, 그 중에 노인들만 골라 욕을 하고, 멀쩡하게 구경만 하던 여성들 머리채를 잡거나 치마를 들추고 해서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기 일쑤였다.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중대장도 그놈에게만은 시민들과 싸우지 말라고 타이를 정도였다. 전경으로 가기 싫다며 울며불며 입대한 그 놈이 휴가를 나와서 얘기했다. “형, 나는 그렇게 싸워.”

3-6. 6. 29선언 바로 전날 이었다. 위수령이냐 계엄령이냐 모두들 신경이 곤두섰다. 포항쪽에서 해병대가 움직였다는 얘기도 있었다. 군대가 투입되면 어떻게 할 거냐,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하자, 아니다 저 놈들과 결판을 내자, 별 얘기 다하다가, 결론은 계엄령 선포 다음날 정오, 반월당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누구든지 먼저 도착한 사람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서기로 했다.

4. 그해 6월, 대구서만 연인원 십수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니 저마다 기억의 한 자락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6월’을 지하에서 배후조종했다는 선배의 가당찮은 말씀에서부터 ‘도망가기 바빴는데 무슨 기억이냐’고 되받는 너무 솔직한 후배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다 그럴 듯하다.
그러는 사이 ‘6월’은 사회과학자들의 메마른 분석틀에 의해 분해되거나 뒷골목 후일담의 저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또 야심가들이 정치적으로 작화한 기억은 6월의 사실(史實)을 왜곡했을 뿐더러 6월의 기억 자체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5. 기억이 자신의 울타리 내에서만 머문다면 문학이 될지언정, 역사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 오늘 우리에게 그해 6월의 기억을 묻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질문이다. 정치적 의무를 묻는 것이다. 이 정치적 요구에 대해 6월의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대답해야 할 의무가 아직 남아있다고 본다.

6. 그 해 6월의 슬로건보다, 6월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그토록 간구했던 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별의 울타리를 넘어 기억을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해 6월은 변치 않을 사람을 남겼다. 20년 동안 쌓여진 먼지도 털어내고 앙금도 씻어내어, 6월의 사람들을 복원시켜야 한다. 전쟁을 경험한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듯이, 항쟁을 경험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7. 나는 사람이 그토록 사회적일 수가 있다는 것, 모든 대화의 처음과 끝이 그처럼 사회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 또 그것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경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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