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6월항쟁 그 후

 

1987년 6월에 불렀던 아침이슬, 그리고 2007년 6월에 불러보는 아침이슬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민주주의를 향한 87년 6월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의 과정 속에서, 2007년 한국사회는 6월 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20년 전 6월항쟁 주역들의 이야기와, 사회변화를 통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2007년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사   회 : 박근식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
좌담자 : 김동률 | KYC사무처장
박영률 | 한겨레신문기자

박근식 : 6월항쟁의 주역들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서 듣고 싶다.
김동렬 : 6월항쟁 당시 대학2학년으로 학생들이 6월항쟁에 참여를 해야한다, 말아야한다의 논쟁이 많이 붙었다. 거리진출은 주로 모였다 해산하는 형식의 반복이었는데, 사람들이 운집을 하니까 두려움 반, 기대심리반이 있었고 집회 중에도 항상 경찰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던 기억이 있다.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면, 남부정류장에서 시내까지의 가두투쟁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비가 내려서 비닐모자를 썼던 기억, 그때 초쿄파이를 던져주던 시민들, 버스를 타고 가는 시민들이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런 시민들의 행동에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반면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학교 내에서 80년 5․18 광주의 진실을 알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진실을 알았던 사람들(학생들)의 저항적인 힘의 결집이랄까, 6월항쟁은 5․18의 역사적 복원이었다.
박근식 : 6월항쟁이 삶에 변화를 준 것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
김동렬 : 이전에는 소극적이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인정이 되고 있지만 반공반북적인 사회분위기속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은 없다고 생각했다. 남과 북은 만나야 된다는 가치와 주제에 공감하면서 통일운동에 학생운동의 역할과 몫이 있다고 여겼었다. 지금은 1999년 대구KYC에서 창립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박영률 : 87년 대학2학년이었는데 후배들과 온종일 거리를 내달리던 일 등이 떠오른다. 군 투입설이 나돌면서 과연 내일 학교 앞에 군이 나와 있으면 광주의 선배들처럼 맞서 싸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꽤 진지하게 하고 그랬다. 6월항쟁 전만해도 대구 동성로에 가투를 나가면 장사 안 된다며 상인들에게 욕먹고 심지어 매 맞던 시절이었는데, 시민들의 호응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다.  87년 6월항쟁은 학생운동권이 만들어낸 운동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온 운동이었다. 당시 시민운동지도부들이 했던 것은 대중들에게 잠재된 욕구를, 하나의 구호로 묶어주었던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87년 이전 건국대 사대의 고립이 말해 주듯이 그 이전 학생운동은 어느 정도 대중들의 요구와 거리가 있었다. 이게 일치하면서 폭발적인 역사의 전환을 가져왔다. 학생운동을 했지만 졸업 무렵 나라 안팍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문득 내가 세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 쪽 일을 하게 된 것도 세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근식 : 6월항쟁세대들이 다 적극적으로 사는 것은 아닌 듯 한다.
김동렬: 사회운동에 평범한 사람과 적극적인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러운게 아닌가. 다만 6월의 시대정신을 잃지 않고, 그 정신에 기초해서 활동을 한다. 과거처럼 특정한 집단, 단체에 소속되어 결집, 지속적 활동은 아니지만 분산되어 가치생산과 자기정체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당위성이 있다. 6월이후 시민이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부재한데, 이것이 운동단체의 한계이다. 생활인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조건 등이 요구되어지고 필요하다.
박근식 : 운동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삶, 그 일상적인 생활에서 본인 가치의 실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판단하는지 혹은 그렇게 본다면 어떠한 부분에서 그러한 건가.
김동렬 : 우리처럼 사는 사람이 특별하지 않다. 다만, 운동의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단체가 갖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를 자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해 왜 적극적이지 못하느냐하고 비판은 가능하지만, 다른 삶의 고민이 나오는 그들만의 문제, 변화된 오늘의 사회에서 생활인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6월항쟁 세대들이 지금 40대중후반으로 사회의 중추적인 자리에 있는데 당시의 고민구조가 사회에 초점이 맞추어졌었더라면, 지금은 교육이나 주택, 부동산 등 여타에 관심이 많다. 다만, 자기자신의 삶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변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의 목표를 세우는 것,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노력과 단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박근식 : 일상적인 자기 삶에만 너무 충실하고 있지 않은가.
박영률 :기자는 사회에 관심을 놓치지 않고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성과 운동성의 양면을 지닌 직업이다. 하지만  과연 사회의 건강한 변화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 되는 기사를 쓰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젊은 시절의 초심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박근식 :사회에서의 생활하면서 가끔 내 사고가 보수적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안의 보수성을 느낄 때는 있는가. 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 20년 전에 가졌던 변혁에 대한 이념과 2007년의 이념의 차이가 명확하게 나는가, 아니면 변함이 없는가.
김동렬 : 의미는 없다고 본다. 이념이 변했다기보다는 사회가 변했고 자신이 변했다. 예전 전동타를 쓰던 시대에서 지금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로 사회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사회변혁 하나로 통했던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 블로그, 사진하나로 자기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운동적으로 반파쇼, 반독재를 생각한다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과거의 이념들이 현재 모두 실현되었는가? 운동은 여전히 이념적,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진행 중이다. 인간존중의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운동은 ing형이며 개념화의 과거처럼 어느직감, 이념이라는 구체적 정립으로 보지는 않는다.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지만, 보편적 가치이념(인권,환경, 평화 등)으로 이전되고 있다. 과거 반독재민주화는 큰 이념이지만, 지금은 다른 차원에서 인간존중을 위한 큰 바다 속에 있다. 과거운동노선으로 평가하기에는 우리사회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박영률 : 20년 전과 비교하면, 사지선다형에서 현재는 주관식으로 바뀐 시대이다. 20년 전은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와 가야할 길이 보이던 시대였다. 지금보다 미국에 더 종속돼 있었고 심각한 남북대립이 빚어낸 정치의 부재, 10만원 미만의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 광주학살의 시대였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분단의 극복, 외세로부터의 자주로 간단하게 요약이 되던 시대였다.
6월 이후 20년에 대해 극우언론들이 부정적인 선동을 많이 하는데 이 기간 동안 한국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남미식 후진국에서 선진국문턱까지 발돋움했다. 노태우 정부는 같은 뿌리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밀려 유신이나 5공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체제였고, 남북대화 틀도 마련했다. 김영삼 정부는 정치군부의 숙청을 통해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김대중 정부는 6․15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분단구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권위주의 타파와 지역주의 해소에 기여 했다. 20년 동안의 과정이 앞의 사지선다형의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왔던 과정이었다. 반면 진보진영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또 다른 새로운 평가와 분석의 틀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답변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식 : 요즘 시민사회 운동의 위기가 얘기 되고 있다.
박영률 : 시민사회운동의 위기라고 많이 하는데, 2004년 탄핵사건이후 급격하게 신뢰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2년대선당시‘노사모’를 통해 정권을 만들어낸 세력은 복잡하게 담론을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운동그룹이 아니었다. 지역감정극복,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리고 몇몇 보스정치인들만의 정당이 아닌 근대적 정당을 원하는 사람들, 이른바 자유주의적인 30,40대의 평범한 소시민들이 만들어낸 정부가 노무현 정부다. 87년 6월, 대중들은 그들이 애타게 갈구하고 외쳤던 그것을 이끌어줄 올바른 노선과 구호들이 나왔을 때 거리로 뛰쳐 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지향,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대중들 속에 있는 것 같은데 정치세력과 시민운동이 그것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동렬 : 역사변화의 과정이다. 예전 정치운동의 절정, 정치적 영역과 세력이 결정했다면 노무현 정부부터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측면에서 다르다. 지금 시민사회운동이나 진보진영이 새롭고 분명한 전망을 찾지 못함에 따라 이들이 내세우는 후보조차 자기 전망이 명확하지 않다. 이것이 분명하다면 일반대중들이 자기 전망을 갖고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운동이 될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운동이나 정치 운동하는 사람이 국민들에 대한 자신감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전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역사적 흐름이라 본다.

박근식 : 87년 6월항쟁의 핵심은 개인적으로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 대중이 주체가 되는 대중노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6월 항쟁의 운동적 의의는 무엇인가.
김동렬 :우리는 과거사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독일은 과거이야기를 하지만, 일본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스스로의 자성이 있어야한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파헤쳐 국민 앞에 드러내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어떤 정부의 성격을 규정할 때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다. 5․18가해자들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조건에서 6월항쟁을 평가한다는 것은 여전히 쿠데타 세력에 대한 두려움, 2007년 대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 과거 운동가들의 불안감이 있다. 이런 불안감을 달래는 노력을 노무현정부는 그래도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을 간과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평가의 과정이 역사의 과정 평가와 함께 이루어져야한다. 보편적 가치와 이념에 기초해서 억울한 자의 유족들을 달래려는 노력들이 민주화과정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단, 식민지과정 등의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이 우리 사회변화 발전이 아닐까 한다.
박영률 : 6월항쟁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맞다 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게 민주주의와 그의 극복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부분들인데, 20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들이 있어왔다. 참여정부는 자신들이 하려는 개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노사모와 개혁당의 출현은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탄핵직후 일시적 포만감에 빠져 방향을 잃고 기회를 놓치고 대중들을 흩어 놓았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이런 정당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하는 회의감도 든다. 일단 중요한 것은 무조건 뭉치자가 아니라 지금 자신들이 대변하려는 세력의 염원을 담은 청사진을 내놓고 그걸 중심으로 연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박근식 : 노무현 정부의 한계로 어떤 점들이 있다고 보는가.
박영률 : 노무현정부는 정치개혁에 있어서도 말이 앞서는 관념적 급진주의였다. 가장 큰 잘못은 대중의 변화 욕구와 에너지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휘발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파시즘복귀를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역량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 각 부분운동도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채 쇠약해졌다. 권위주의 세력이 복귀해 복고적인 통치를 해 나간다 해도, 역사의 회귀를 막을 세력들의 능력이 과연 있는가, 의문이다.
김동렬 : 참여정부는 세력교체에 실패했다. 근본적인 진보와 개혁을 살리지 못했다. 일례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 수 있다. 자기아집에 빠진 정권인 참여정부는 정치주체 수용(포용)능력이 떨어졌고 대중의 역동성을 살리지 못했고 지지정치세력과의 결합력도 부족했다.
박영률 : 지지자들이 할 말이 없어져 버리게 한 노무현정부는 지역주의 극복이란 과제에 관념적으로 접근했다. 결과적으로 지역감정도 극복 못했다. 대구지역 내 정치인식의 변화를 보면, 김대중 정부 때는 단순히 호남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단순지역주의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는 극우보수주의(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적대심과 불안감 등)가 지역주의와 결합, 변화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며 지역주의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했다. 호남의 경우엔 민주당이 토호세력을 대변하며 호남지역정당으로 굳어지는 현상이 자리 잡았다. 지역주의는 단단한 물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지역주의 극복구호는 그 의도는 좋았지만 변화한 과녁들을 맞추지 못했고 구체적인 극복방안과 실천수단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했다.
김동렬 : 지역주의에 대해 너무 정치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주의는 역사인식의 차이이다.
일례로 광주 5․18에 대한 영․호남의 역사인식이 다르다. 지역주의는 과거사에 대한 자기반성, 철저한 교육계획이 부재한 데서 온다. 지금 20대들은 5․18에 대해 잘 모른다. 대구지역 내 현 세대를 위한 과거 역사테마교육에 대한 노력이 부재하다. 현대사에 대한 아픔을 교육하는 활동이 시민사회의 하나의 영역이 아닌가. 시민운동이 정치운동의 종속물이란 생각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의 20대들의 역사공부가 없어 정치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이 나타난다. 6월항쟁 세대들이 시민운동의 역할측면에서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는 자기계획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변화가 있는 만큼 새로운 세대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박근식 :현재적 시민운동의 모습과 방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박영률 :정치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의 시민운동은 풀뿌리 운동 형태로 가야한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회원을 유지하고 늘리고 있는  대구KYC의 활동은 좋은 례가 될 수 있다. 작은 단위에서의 공동체 활동이 필요하고 생활과 문화가 결합하는 형태의 운동이 요구되어진다.
그런데 지금 시민운동의 내용 대부분은 정당이 해야 할 영역이 많다. 인권, 평화, 환경 등 각 부문운동의 영역이 시민운동의 영역이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위치로의 도약이 필요함에도 지금의 시민운동은 언론에 의존하고 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식의 백화점식 시민운동은 정당으로의 전환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동렬 : 87년 시민과 오늘의 시민을 비교해 보면, 오늘의 시민은 인간본성자체의 측면과 사회에 환원하고 참여하려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는 이타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근데, 현재의 시민운동은 대리적 운동을 하고 있다. 87년 6월의 사람들이, 2007년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이전 운동은 역사 때문에 참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사회에 대한 욕구들은 다 갖고 있다. 대구지역 내 시민운동이 이러한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너무 이슈적인 점에 치중하기보다 함께 활동하고, 함께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사회로 나가야한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운동의 포지션은 어떠한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육성, 발굴하며 리더십훈련도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의 자성과 노력이 요구되어진다.
박영률 : 2004년 탄핵을 기점으로 시민운동에 대한 신뢰가 많이 저하되고, 시민운동세력들에 대한 정치적 의심이 많아졌다. 정치적 입장에 대한 거부감과 의심이 많아진 것이다. 그에 반작용으로 보수세력 내 유사시민단체들이 출현하면서 우파 시민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언론플레이에 너무 의존하는 시민단체 운동의 한계는 결과적으로 대중성과 신뢰성상실을 초래한다. 정당으로 전환하든, 시민운동의 고유영역을 찾든 자기기반과 근거, 자기회원을 갖고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박근식 : 6월 이후 잊지 말고 살아야하는 가치라든지, 20대의 후배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해 주기 바란다.
김동렬 :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국민들의 노력, 운동가적 입장에서 삶의 성찰(과정), 그리고 끊임없는 비젼모색 개인적으로 진실, 성찰, 모색의 3가지에 바탕한 새로운 목표의식을 세우고 사는 과정으로 말하고 싶다.
박영률 : 20년 동안 한국사회는 선진사회의 문턱까지 도달했다. 70년대 남북한을 잇따라 방문한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가 당시 남북한은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라고 회고한 글을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이 지금은 아시아의 선도국으로 발돋움 했다. 민주주의의 힘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은 (비판적인 시각이 물론 있지만 분명) 아시아에서는 최고수준이다. 한류열풍은 민주주의 성과라 볼 수 있다. 보다 많은 다수에게 경제적 평등의 민주주의로의 승화, 발전 시켜나갈 것인가? 아니면 권위주의 복귀와 퇴행을 가져올 것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각 부분과 영역에서 힘들을 어떻게 다지고 키워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김동렬 : 6월항쟁 세대들의 몫과 역할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호흡과 역할, 끊임없는 시민운동의 참여와 활동이 필요하다.
박영률 :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박근식 : 6월항쟁이 준 삶의 가치와 의미,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해서 뜻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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