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의 ‘품격’- 김윤상회원

이명박 정부의 ‘품격’

[김윤상 칼럼] “기회균등이 멀어지는 물질 중시..정의는 무너지고 갈등은 커진다”

물질적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사람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의 품격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이명박 정부의 품격은 어느 수준일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화두는 “경제”, “대운하”, “줄푸세”(세금과 정부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교육 자율화” 등이다.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이 등장했다. 이런 핵심단어를 통해 새 정부의 품격을 매겨보자.

이명박 정부는 물질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자극하여 탄생한 정권이다.
“경제”, “대운하”, “뉴타운”이 이를 반영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물질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물질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품격이 떨어지게 된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품격이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물질을 원하는 국민이 선택하였고 또 다른 정당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명박 정부의 품격을 이 기준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물질 추구 방식에서 타인을 어느 정도 배려하는지에 따라 품격이 정해질 것이다. 가장 낮은 수준에 적자생존형 분배관이 있다. 공정한 규칙이 존재하건 말건 각자 환경에 적응하여 이룩한 분배 결과를 모두 차지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분배관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인을 경쟁상대로만 파악하고 각자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동원한다. 비자금으로 권력기관에 로비를 벌여 규칙을 왜곡하고 심판을 매수해온 삼성이 좋은 예다. 이런 사회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규칙의 공정성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국민 갈등을 야기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효율성마저 떨어진다.

가장 높은 수준에는 박애형 분배관이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서 공생해야 한다는 박애주의에 기초를 두고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분배관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공산주의 분배관, 유토피아 분배관이 여기에 속한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구별하지 않으면서 모두 더불어 나누는 종교적 차원의 분배관, 예를 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무주상 보시(無住相 布施)”와 같은 분배관에 이른다. 이런 사회에서는 빈부격차 문제가 거의 없다. 그러나 원인을 불문하고 모든 결과를 같이 나누므로, 이기심이 앞서는 현재 수준의 인류에게 주는 생산적 인센티브는 가장 낮다.

그 중간 수준에 기회균등형 분배관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가운데 선택의 결과를 선택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는 분배관이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평등한 자유를 보장한다. 소득, 재산, 권력, 명예, 안전 등을 사후적으로 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를 사전적으로 동일하게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떤 수준의 분배관을 가지고 있을까? “줄푸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무엇을 줄이느냐, 어떤 규제를 푸느냐, 누구를 향한 법질서 세우기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강자의 특권을 없애고 약자의 노력을 지원하여 국민에게 동일한 출발선과 전망을 보장하면 기회균등형의 수준이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교육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노력과 능력 이외의 요인에 의해 교육 기회에 차등을 두려고 한다. 종합부동산세를 줄이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서민과 노동자를 겨냥하여 법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이런 정책은 적자생존형에 가깝다.

이처럼 물질을 중시하고 기회균등에서 멀어지는 정부의 품격을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의 막말이 품격을 떨어트렸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책 내용이 품격을 떨어트리고 있다.

우리가 좋은 사회, 품격 높은 사회를 꿈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명하다. ‘시장주의’, ‘자유주의’를 정책 기조로 삼는다고 하는 이명박 정부는 시장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야 한다. 선택의 자유에는 기회균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편 우리네 백성도 생각하고 각성해야 한다. 관심 대상이 물질과 나뿐인 “나뿐 사람 =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 김윤상 칼럼11>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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