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대란의 사회학

신용카드 대란의 사회학

감사원은 지난 16일 신용카드 대란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신용카드 대란의 원인이 신용카드 사용자들의 도덕적 해이, 신용카드 회사의 무분별한 확장 경영, 금융감독 부실에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감독부실의 책임을 물어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에 기관 주의 조치를 내리고 금융감독원 부원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금융감독원장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특별감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사원 감사가 고위 정책당국자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란의 공식적인 책임규명은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일단락되겠지만 신용카드에 대한 어설픈 정책의 후유증은 오랫동안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신용카드 빚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여파로 자살을 선택했다. 신용카드 빚으로 파괴된 가정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신용카드 대란의 사회학은 역설의 사회학이자 소비의 사회학이다. 신용카드 대란은 신용카드에 담보되어야 할 신용이 부재하여 나타난 현상이다.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죽어있던 내수경기를 살리고자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신용카드사들은 신용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신용카드를 발행했고 심지어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장려금조로 나눠주는 웃지 못할 현상도 벌어졌다. 아무 소득 없는 사람들에게 발행된 신용카드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용과 관계없이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사용했다. 신용없는 신용카드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용없는 신용카드라는 역설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역설은 일시적으로는 정상인 것처럼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지 않아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역설의 사회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좋은 사회가 될 수는 없다. 신용카드 정책을 입안한 당국자라면 당연히 역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신용카드 대란은 소비사회의 유혹과 맞물려있다. 신용카드 규제 완화 정책을 입안한 정책당국자들은 신용카드 사용자들이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그 기대를 간단하게 저버렸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하나의 명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소비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오늘날의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소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 모른다.

특히 소비의 쾌락을 누구보다도 만끽하는 젊은 세대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유혹의 손길에 쉽게 넘어가 버린다. 소비사회의 요술방망이 신용카드와 억제하기 힘든 소비충동이 합작하여 낳은 것이 바로 신용카드 대란이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신용카드 규제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풀어놓은 정책당국자들이나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한 카드회사 경영자들이 시장에서의 소비자 행동이나 소비사회의 성격을 초보적이나마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카드 사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엄중하게 추궁되어야 하겠지만 정책당국자들이나 카드 회사 경영자들 역시 소비자의 행동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카드 대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용카드 대란은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종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책당국자들은 무엇보다 신용카드 대란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새로운 대란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또다른 역설을 낳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국민을 괴롭히는 정책이 되고마는 역설말이다. 제발 정책을 입안하는 당국자들은 사회 흐름을 꿰뚫어보면서, 자신이 입안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를 미리 예측하는 안목을 갖추길 부탁하고 싶다.

2004-07-21 11:17:05 입력

백승대<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이글은 영남일보 영남시론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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