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도 영재입니까 ?

자신의 아이가 영재라는 말을 학교 교사로부터 듣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엄마가 있었다. 천재 혹은 영재라 불리는 특별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재 소년 테이트’. 테이트의 엄마(조디 포스터)는 아이가 영재라는 사실이 기쁘지가 않다.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한여름에 부서지는 햇살같이 밝게 자라기를 원하지만 ‘천재성’이 넘치는 조숙한 아이의 머릿속은 매사 너무 진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냥저냥 볼만한 영화에서 굳이 교훈거리를 하나 건지자면 “평범해서 행복해요” 쯤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낯간지러운 메시지의 현실적응력은 0 % 다. 우리 사회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내 아이는 특별하다’고 주문을 거는 부모들이 평범과 행복의 함수관계를 곧이곧대로 받아드릴 리 만무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초월하여, 유치원부터 입시학원까지 이른바 ‘영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내 아이 영재 만들기’ 증후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 유명 학습지 회사로부터 ‘자녀의 인성 적성 능력 여부’를 검사해주겠다는 제안을 종종 받곤 했다. 물론 지금까지 한 번도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솔직히 학습지 회사들이 고객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편일거라는 생각도 들고 또한 평가 기준과 평가방법이 미덥잖은 탓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혹시 이런 경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귀댁의 자녀는 잠재된 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본사의 학습 프로그램을 성실히 따르면 현재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학습지 회사의 호의(?)를 번번이 거절하면서도 아이의 장래가 그리 걱정되지 않는 것은, 미리 알든 모르든 아이가 가진 재능은 사라지거나 마모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굳이 미리 알아서 발굴해야 할 만큼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지만, 그보다는 별나고 야단스레 수선을 피지 않아도 아이는 제 몫을 해낼 것이라는 ‘고슴도치 엄마’의 믿음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리라.
근데 아이가 초등 6학년이 되면서 요즘 고슴도치 엄마의 믿음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학교에서 치른 ‘영재 선발 시험’에서 탈락하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을 겪고 난 후 아이가 느끼는 실망감을 지켜본 이후다. “엄마 생각에 넌 영재가 아닌 것 같다”는 솔직한 말은 애한테 너무 잔인한 듯하고, 그렇다고 “평범해서 행복해요”라고 읊조리기에는 애가 너무 어리고. 결국 고슴도치 엄마의 사랑은 천박한 호기심으로 변질되고야 말았는데, ‘도대체 어떤 아이들이 영재일까’에서부터 시작하여 종국에는 영재 선발시험의 성격과 선발되는 방법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기가 막히게도 영재를 뽑는 기출문제들이 학원가에 떠돌고 ‘영재시험대비 전문학원’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단 영재로 선발되면 교육청이나 각 대학별 영재교육원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다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아이 영재 만들기’ 증후군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영재교육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나니, ‘야단스레 수선을 피며 사교육시장으로 내몰아야’ 제 밥그릇 챙길 것 같다는 조급증이 화라락 생겼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나 나름의 교육적 소신?  한마디로 ‘개뿔’이 되는 순간이다. 이런 !

과열된 사교육, 급조되는 영재들

‘영재교육 education for the gifted children’은 왜 필요 한가 ? 문자 그대로 ’타고난 gifted’ 재능을 가진 아이들, 즉 영재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하면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기실 틀린 말이 아니다. 시쳇말로 ‘한 사람의 우수한 인재가 수 백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자극적인 문구는 거부감이 들지만, 어쨌든 타고난 인재를 발굴, 육성 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넘쳐나는 영재들은 ‘타고나기’보다는 ‘길러진다’는 것이 더 적확한 말일 듯하다. 그것도 영재교육이 가장 터부시해야 할 주입식 교육을 통해서 급조되고 양산된다. 교육청과 대학 영재 교육원에서는 해마다 영재들을 선발하고 있고 ‘영재 희망자’는 학원마다 넘쳐난다. 영재가 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선행학습’. 초등학생이 중학교 과정을 미리 배워둔다면 영재가 되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교육전문가들이 선행학습의 부작용을 고장난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든 말든, 사교육시장에서의 선행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지 오래다. 평준화 교육의 한계를 영재교육으로 돌파하겠다는 교육계의 바램과, 내 아이를 영재로 만들고자 하는 부모들의 필살의지가 융합된 ‘영재 만들기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자가발전하고 있다. 사교육시장을 달구면서 말이다.

‘평범해서 행복한’아이를 굳이 영재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교육의 최후의 목표이자 마지막 종착역은 ‘명문대학 진학’이며, 과열일로를 걷고 있는 영재교육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절묘한 합작품인 지금의 영재교육은 ‘명문고’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온갖 종류의 학원에 나붙은 ‘영재교육‘은 상업적 노림수가 빤히 보이는 흔해빠진 수식어가 되고 있지만, 대학입시라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단어일 것이다. 사교육시장에서 훈련된 ’주입식 영재‘들에게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을 지닌 진정한 영재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해마다 되풀이되는 영재선발시험을 준비하는 부모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아이도 영재입니까?…정말? ”

글. 허경주 (편집위원 kyongju-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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