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민주주의 그리고 아시아

[5.18 아카데미 연수- 태국,네팔,필리핀에 다녀와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다시 묻다.

광주민주화항쟁 25년이 흐른 지금, 5·18 아카데미를 통해 다시 되짚어 본 한국민주화, 민주주의의 현재는 위기담론으로 만연하다. 왜일까. 위기는 외부적이면서도 동시에 내부적이기도 하다. 현실의 고통은 심화되고 있는데, 새로운 희망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25년전 광주에 세워졌던 시민자치적인 자율, 평등의 대동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실과 가깝지가 않다. 80년 광주의 기억조차 희미해져 역사적 부채의식이 사라지는 지금, 끊없는 경쟁과 자본의 구조를 성찰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평등, 대동세상은 과연 가능하기는 하단 말인가?
광주 5월의 정신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나눠먹는 것’, ‘평화’의 정신이다. 바로 대동세상을 만들 희망을 위해 전진해 가는 진보와 민주개혁세력이 이 화두를 분명히 붙드는 것이다.

아시아와 만나다.

대구에서 주민운동에 대한 경험과 사례는 아직 풍부하지 못한 편이다. 무엇보다 지역사회를 구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전략과 실천적 과제를 찾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일상속에서 작동하고 소통하고 일상적인 관심사 속에서 진화해 나가는, 민주주의를 넘어선 가치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주민운동의 다양한 가치 만들기 – 자치, 자립, 생태적 전환과 성찰의 민주주의, 형평, 공생, 정의, 지속가능성, 연대의 민주주의,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는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 이러한 가치들을 담아낸 주민운동은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으며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주민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오랫동안 주민운동(CO)의 경험과 풍부한 사례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을 통해 본 주민운동의 현장은 나에겐 충격과 아픔, 그리고 따스함을 동시에 주었다. 도시빈민지역에서 강제이주로 인해 삶의 근거지를 잃어버리고 정착촌이 형성된 마을에선 전혀 주민활동가로 보이지 않는 수더분한 동네 아줌마 모습으로, 동네 어디를 가든 주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귀기울여주고 그들을 안아주며,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는 PhilCOS의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들 활동가의 지속성과 헌신성 앞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삶을 위한 저항,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바로 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운동의 본질적 모습이다. 이들은 활동가들이 지역사회 변화를 위해 ‘누구와 함께 손잡고 어떻게 일할 것 인가’를 몸으로 얘기해 주었다.

필리핀 주민운동은 개별단체 활동에 그치지 않고 늘 연대와 소통으로 운동을 확대해 나간다. UPA 처럼 철거지역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기 위한 활동단체는 이후 정착촌에서 COPE 나 CO-Militiversity 와 연대해 지역조직과 주민조직을 지원하며 지역조직 활동가를 키워나간다.

이들이 긴밀하고 서로와 교감하고 연대해 나갈 수 있는 힘은 필리핀 민중들의 처참한 삶이 현실 앞에 놓여 있기도 하고 민중들의 삶을 공동체로, 지속가능한 주민단체를 조직화 나가면서 인간중심적인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의 목적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을 실현해 나가는데 이들은 무엇보다 장기간의, 강도 높은 활동가 훈련과 교육을 해나간다. 활동가들은 지역현장에서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해 갈등조정 능력을 키우며 주민들과 소통하며 교육할 수 있는 자원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이들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각 지역의 활동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이들은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이고, 분석적이며, 비판적이고, 전투적이며, 민족적이고, 성차별로부터 자유롭고, 환경 친화적이며 민중이 주인되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지역공동체의 개발에 앞장서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것이 바로 필리핀 주민운동의 가치이자 방법이며 사명이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정치적 격동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곳곳의 모습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현실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며 분노하는 삶 그 자체였다.
불복종의 파도처럼 혁명의 주체이자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폭발력을 보여준 아시아 민중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열망,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자본은 그 자신의 동력학을 획득하며 사회의 지도적 구성원들을 아주 단순히 그것의 가장 충직한 하인, 그것의 가장 비굴한 아첨꾼이 되도록 한다’는 조언을 기억하며 정치인과 지식인들, 권력자들의 이중적이며 비인간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되지 않기를, 혁명과 권력장악 사이의 고리를 끊어내기를 바래본다.
진정으로 그들 스스로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기를. 인간을 위한 발전을 위해 나아가기를….

글. 김영숙(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준) 사무국장 dupras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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