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사회를 어떡해야… – 김용락

평화뉴스에 실린 김용락 운영위원의 칼럼입니다.

아! 이 사회를 어떡해야 할 것인가?

[김용락 칼럼] “술로써는 안돼 ‘자살 권하는 사회’가 되었나..”

대구 출신의 작가 현진건이 쓴 <술 권하는 사회>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1921년 <개벽>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소설인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이 허구한 날 술이 취해 새벽에 귀가하니까 부인이 화를 낸다. 그러자 주인공이 “이 사회라는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라고 강변하고, 부인이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탄식하면서 소설이 끝난다.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을 하고 온 조선의 지식인이 취해야 행동은 일본제국주의 권력에 붙어 친일하면서 살거나 아니면 현진건처럼 매일 술에 취해 새벽 2시에 귀가하면서 ‘술 권하는 사회’에 절망하거나 그도 아니면 시인 이육사나 윤동주처럼 순교하는 방법뿐이다. 그 어느 것도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2천 년대도 중반을 넘긴 지금 이 시대, 여전히 노숙자가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89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망과 절규하는 양극단의 시대, 어느 누구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다. 지금 이 시대가 결코 식민지시대이던 1920-30년대보다 더 나을 성 싶지 않다. 당시는 정치권력의 파시즘 아래 있었다면 지금은 어김없이 자본권력의 파시즘 아래 있다.

며칠 전 인상 좋은 한 탤런트가 자살했다. 그는 죽음을 위해 연탄 두 장을 사용했다. 인기 탤런트의 돌연한 자살답게 우리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탤런트가 죽기 하루 전인 9월 7일 대구시 율하동에서 37세의 젊은 어머니가 5세와 7세짜리 두 아들에게 농약을 먹이고 자신도 역시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자살공화국, 평범한 서민들의 죽음이 줄을 잇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OECD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인구 10만 명당 21.5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2007년도 자살자 수는 총 1만3천407명, 하루 약 36.7명꼴로 2006년의 1만2천968명보다 439명이 늘어났다고 한다.(영남일보 208. 9. 9)

내 주변에서도 근래 몇 사람이 자살했다. 가까이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외종형이 지난해 자살했다. 낙동강 댐 부근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승용차문을 밀폐시켜 놓고 자동차배기가스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차 안에서 발견된 것은 갈기갈기 찢어진 30여만 원가량의 만 원권 지폐였다. 그 죽음의 배후를 추정할 만한 충분한 물증이었다. 그 일에 충격을 받았는지 외숙모님이 많이 편찮으셨다. 큰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 집안에서 굿을 한 모양이다. 평소 친정 조카를 아끼셨던 어머니께서 굿 구경을 하고 오셔서 반쯤 넋을 잃고 있었다.

외종형 사자의 영혼이 나타나서 “고모, 내가 죽고 싶어서 죽었나? 돈 때문에 죽었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는 “돈 때문에 죽을 것 같으면 세상사람 다 죽지 살 사람 어디 있노?”라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 끝자락에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아마 인간들의 실존적 고독에 대한 기록으로 읽힌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조금 변주해서 이해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저 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들도 가슴 깊은 곳을 열어보면 어딘가 ‘돈’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라고.

내 주변에는 평생 자발적 가난, 혹은 자발적 극빈을 실천하시다가 간 분도 있고, 또 여전히 자발적인 가난을 주장하는 분도 있다. 다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스승들이다. 그러나 이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은 비범한 사람에게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사회 전체가 골고루 가난하다면 이 가난을 받아들일 수 있을 런지 모르지만 상대적 가난을 참아내기에는 깊은 공부와 수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살공화국, 대한민국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쳐들어’ 와 깊어가고 어김없이 추석이 왔다. 올 해는 지난해에 비해 2.3% 정도 귀성객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이 끊임없이 자살을 권하는 가파른 사회에서 마음을 잠시라도 풀어놓고 쉴 곳은 그래도 역시 고향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는 자연산천 뿐인지 모르겠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귀성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의 가슴은 돈 때문에 또 얼마나 멍이 들어있을까? 생각해보니 속이 아리다.

일전에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를 두고 보는 시각에 따라 많은 진단이 있었지만,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야만적인 사건이라는 식의 해설이 많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오세철 교수는 셰익스피어 연구자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번역가인 전 연세대 교수 오화섭의 아들로 기억돼 있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명문대학인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한 유학파 교수,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중산층인 오 교수가 맑스주의자가 된 사연이, 그리고 그 신념을 지금까지 갖고 가는 동력이 무엇일까? 하는 극히 사적인 호기심이 이 사태를 보는 내 눈에 착색돼 있지만, 사노련의 강령 가운데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글귀만은 선명하게 내 가슴에 새겨진다.

자본주의 옹호 경제학자인 케인즈도 “이리 떼의 자유가 양 떼에게는 죽음을 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선량한 양 떼들이 들판의 풀을 뜯다가 이리의 습격에 쫓겨 독극물을 마시고 연탄가스를 피워놓고 자살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광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어린 한 마리 양에 불과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술 권하는 사회’였던 1920-30년대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식민지시대였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는 국민의 80%가 농업에 농사하는 농경사회였다. 술에 만취해 고성방가를 하고, 때로는 심하게는 행패나 난동을 부리고 나서도 다음날 아침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다시 일터에서 일 할 수 있고, 간밤의 그 술 취한 행패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던 사회적 온기가 남아있던 시대였다. 그래서 술 권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국민의 7%만이 농사에 종사하는 차가운 산업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술로써는 안돼, 농약이라는 독극물과 연탄가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자살 권하는 사회’가 되었나보다.

아! 이 사회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용락 칼럼24] 김용락(시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daegusc@hanmail.net)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치소리를 듣고 싶다>, <단촌역>,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으며,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사회비평] 편집.발행인을 거쳐 현재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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