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없는 ‘짝퉁 선진화’- 김영철회원

김영철회원이 평화뉴스에 쓴 칼럼입니다. 옮겨 싣습니다.

영혼 없는 ‘짝퉁 선진화’

[김영철의 경제읽기] “박정희식 근대화, 비현실적 시장 논리..무식한가 무모한가”

조용팔과 너훈아를 아는지. 이들은 짝퉁이다.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 부르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보고 그저 피식 웃을 따름이다. 이에 반해 일류 가수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늘 감동한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선진화는 일류 가수가 되는 것과 같다. 한 사회의 고유한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때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선진화를 달성하고 있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서로 확연하게 구별되는 개성 때문에 각자 일류 가수인 것처럼, 선진국은 상호 비교될 수 없는 독특한 사회 운영 방식을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박정희식 근대화를 뛰어넘는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선진화의 과제는 바로 이를 일컫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 없이 근대화와 선진화는 각기 다른 조건과 방식을 요구한다. 근대화는 따라잡기 방식으로만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는 서구 따라잡기 방식으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선진화는 그런 도식화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선진국을 걸맞게 우대하는 것이다.

근대화에는 성공하였지만 선진화 문턱에서 좌절한 국가가 최근 들어 속출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한 사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내면의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고 감당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짝퉁 가수의 운명을 닮았다고 할까. 한 사회가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조건은, 일류 가수가 그렇듯, 따라잡기 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모습의 고유한 사회적 이상을 어떻게 독창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내세우는 명분이야 어쨌든 박정희와 전두환 이후 한국 사회는 박정희식 근대화를 뛰어넘어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한 암중 모색을 해왔다. 그 사이 민주화 투쟁도 일어났고, 외환위기에 봉착하였으며, 또한 남북한 통일을 위한 대화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 고유의 문제에 대한 해결 과정으로서 보기에 따라 서툴기 짝이 없었다.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수반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과정에서 한 발짝 한 발짝 느리지만 선진화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룩해 놓은 이러한 조그만 성취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것도 선진화라는 구호를 앞세워서. 좌파적 딱지는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다.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는 두 가지 거울을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 하나는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선택적 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을 이상적으로 미화시킨 경제학 교과서이다. 이 두 가지 거울은 실체적 현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두 가지 거울에 비추어진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의 구상은 과거에 대한 선택적 기억과 무수한 가정의 조합으로 도출된 가상적 현실로 억지로 만들어진 작위적 허구이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식 근대화를 뛰어넘어 새로운 상상력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좌파적 딱지를 붙인다. 이에 항거하는 행위는 법치주의를 내세워 공권력으로 제압한다. 이명박 정부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 나이가 많은 인사일수록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기억은 거의 신앙적 경건함으로 숭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는 이들 외에 또 다른 부류가 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인사들이다. 이들은 미화된 과거 대신에 경제학 교과서를 마치 종교적 교리처럼 받아들인다. 이들은 교과서 속의 세상과 교과서 밖의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현실적인 감각이 없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규제를 철폐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성장률을 높이게 되면 곧장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 역시 비현실적인 시장 근본주의자라고 비판을 하면 어김없이 좌파라는 딱지를 내세워 상대를 반격한다.

박정희식 근대화의 기억을 통해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어느 나라에도 그대로 통한 적이 없는 경제학 교과서의 시장 원리를 우리 사회에만은 그대로 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무모한 것인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최근 신문 기고문에서 ‘성장을 위해서 왼쪽으로 돌아라 (Turn Left for Growth)’고 말한 바 있다. 자동차가 빨리 달리기 위해서 브레이크가 필요하듯이, 경제 성장을 위한 거시 정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측 깜빡이를 넣고 빠르게 후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좌측 깜빡이를 켜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스티글리츠의 충고는 이 때문에 너무나 적실하다. 더구나 실용이라는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임에야!

박정희와 경제학 교과서라는 두 개의 거울에 비친 작위적 허구로 우리 사회를 재단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영혼을 버린 짝퉁 가수와 다를 바 없다. 스스로 우파라고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지만 그래보았자 결국 우파 짝퉁에 불과하거늘. 우리 사회는 영혼 없는 국가로 전락하려는가.

[김영철의 경제 읽기18]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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