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도시의 비전

요즘 각 도시마다 문화경쟁력을 쌓기 위해 난리(?)다. 자신을 대표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문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인데, 부산에는 국제 영화제가 있고, 광주에는 미술 비엔날레, 부천에는 애니메이션축제가 있는 등등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매머드급의 축제형 문화행사를 개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교차하고 있지만, 상당부분 성과도 이루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의 경우는 <섬유도시>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축제로 연결되는 문화행사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관련 행사가 해마다 있기는 하지만, 보다 역동적이면서 폭넓은 시민적 참여가 이루어지는데는 섬유라는 종목 상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파리가 에펠탑으로 관광수입을 올리고, 뉴욕
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피카디리 거리가 연극 및 각종 공연으로 관광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한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적인 브랜드는 문화 자긍심만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지 브랜드가 가져오는 산업적 효과는 만만치 않다. 어쨋든 이런 저런 맥락을 두고, 대구는 <뮤지컬><오페라>를 문화 브랜드로 잡았다. 일전에 한 기획사에서 가져온 <맘마미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 가능성을 잡은 모양이다. 사실, 최근에 타도시에 가서 <대구에 오페라/뮤지컬이 된다며>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공연예술 중에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대구 시민의 정서와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당장에 2007년부터 뮤지컬 축제가 시작되고, 2006년 2월에는 그 시범단계로 전야제같은 형식으로 뮤지컬이 공연된다고 하니 정말로 그 기대가 크다. 대구에서 실제로 공연될 뮤지컬의 내용에도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보다는 문화 브랜드로서의 <뮤지컬>에 기대하는 바가 더 크다. 뮤지컬은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몸의 언어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음악과 함께 이루어지는 분야이므로 장르 자체가 흥이 넘치면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크고, 상대적으로 보다
열려있는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전국적으로 뮤지컬을 문화 브랜드로 삼고 있는 도시는 없다. 문화 브랜드로 삼을 경우, 처음에는 외부자원의 활용이 많을 수 밖에 없겠지만, 차츰 내부적인 창작 역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또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해내는 데에 지자체가 역할을 해준다면야, 세계적인 브랜드로서의 대구를 알리는데 청신호가 들어오지 않겠는가 하는 빠른 기대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기왕에 실행될 것이라면 비판적인 시각을 위해서라도 뮤지컬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저런 이유로 대구 도시의 문화 브랜드에 관심이 가지게 되었고, 예전에 눈여겨보지 않던 공연 일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12월 대구에서 진행되는 공연일정은 생각보다 그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했다. 창작 뮤지컬에서부터 장기공연되었던 국제적인 뮤지컬 등. 이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난타 Nanta>였다. 난타(亂打)는 말 그대로‘마구 두드린다’는 뜻이다. 난타는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하여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써 한국 최초의 넌버벌공연(Non-Verbal Performance)이라고 하며, 한국의 사물놀이를 서양식 공연양식에 접목한 것이다. 넌버벌이란‘말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타악기 연주를 한번쯤 관람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타악이 주는 기쁨이란 원초적인 생동감과 힘으로부터 온다. 언어 이전에 직접 몸으로 부딛혀 오는 소리의 진동과 강한 충격은 도장처럼 찍히는 것이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몸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심박수라는 생체리듬에 기본적으로 묶여 리듬을 타듯이 두드리는 타악기는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동감을 직접적으로 우리 몸에 전달해준다. 난타는 바로 이런 원초적인 생명력, 그 힘을 발산하는 공연인데, 이 작품은 대형 주방을 무대로 하여 네 명의 요리사가 등장하고 결혼 피로연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종 주방기구 즉 냄비, 후라이팬, 접시 등을 가지고 사물놀이를 연주한다. 이 공연을 보러갔을 때, 줄거리를 대강 알고 갔지만,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이‘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려구! ’하는 다소 냉소적인 기분도 있었다. ‘주방’이라는 좁은 공간의 설정, 4명의 요리사– 이 속의 재미를 상상하기에는 나는 너무 뭐를 몰랐던 거다. 그리고 주방기구를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한번씩 코미디프로에서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 몇 가지가 겹쳐지면서 타악기로의 변신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어둠 속에서 요리사들의 타악연주가 힘차게 등장한다. 강약으로 자신의 언어를 뱉어 놓는 연기자들은 물을 붓듯이 그렇게 몸의 기운을 확- 쏟아내는 것 같았다. 솥, 냄비, 기름통, 자장면 배달통 등 각자 개인의 주방기구를 들고 등장하여 함께 연주를 하고 악기들끼리(주방기구들) 대화를 나눈다. 묘기에 가까운 칼의 놀림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재즈 연주처럼 협연과 개인기를 보여주며 진행되는 공연은 공연장을 온통 들썩거리는 춤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스프를 요리하는 동안 주방기구들로 인한 경쾌한 연주와 코믹한 장면이 유도되며, 쓰레기통이 관객석으로 던져 지기도 한다. 샐러드를 만드는 과정을 칼과 도마를 이용하여 리듬과 움직임으로 소리와 볼거리를 만들고 서로의 칼 솜씨를 자랑하며 박진감 넘치는 가락을 도마치기로 대신한다. 주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금, 설탕, 고추장, 간장 통으로 축하연 분위기에 리듬과 볼거리를 더한다. 정말 공연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온 몸이 멍멍한 채로, 잠시 동안 두드림 속에서 풀려나질 못하게 된다. 뭔가 후련하고 개운하다. <난타>와 같은 공연은 이미 예전에 봤던 공연이기도 하고, 또 성공한 공연이라서 크게 덧붙일 것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창작 뮤지컬 쪽, 특히 대구에서 제작된 창작뮤지컬을 한편 보고 글을 쓰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이번 기회로 뮤지컬 내부를 보다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었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뮤지컬의 보다 넓은 지평이 보이기도 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상황을 따져 봐도, 금세기는 <축제, 파티의 시기>라고 한 어느 학자의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조용하게 머물러서, 천천히 뭔가를 하는 시기는 아닌 것 같고 뭔가 좀 소란하고 화려하고 빠르고…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기 위해 전방위에서 그물처럼 덮쳐온다. 당연히 느림의 가치를 더욱 더 새겨보아야 하고, 또 무엇으로 파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이런 기회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넓혀지고, 담론이 확장된다면야 그 공은 충분히 인정 될 만 하고 앞으로 진행될 축제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비판적 기능도 가능하다고 믿으면서 좀 더 신명나게, 적극적으로 문화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난타에서 느꼈던 후련함과 개운함을 뮤지컬이 줄 수 있다면, 대중적인 호응도 기대할 수 있겠고, 대구 문화 브랜드로서의 가치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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