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그러나 절박한 이야기, 호주제

진부한 그러나 절박한 이야기, 호주제

                                               이은주(대구여성회 성과 인권위원장)

  여느 추석처럼 올해도 참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나섰다. 둥글고 탐스러운 달. 구름 사이로 어릿거리는 달빛이, 사람들 길고 긴 행렬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추석날 모인 가족들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묵었던 감정을 털어 내느라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을 묵고 그들은 왔던 그 먼 길을 그대로 되짚어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부모 형제와 친지들을 만나고 고향 산천을 둘러보며 생활에 찌들린 영혼의 안식 한 조각 마음에 새기며 돌아갔으리라. 타오르는 추억이 얽힌 사람과 장소를 가진 이는 얼마나 행운인지! 게다가 해마다 만날 수 있다면 시간의 결을 피부로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 행운은 안타깝게도 여성의 것은 아니다. 누구의 형제와 친지이며 누구의 고향이었던가? 그 곳은 바로 아버지의 고향이요 남편의 고향이다. 남자의 아내가 된 이 땅의 절반의 사람들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향해 가지 못한다. 깊이 교감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과 고향을 만날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에게 명절은 더 힘겹고 불행해 진다. 그런데 이들의 불행은 개인의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예쁘거나 밉거나 모든 여성에게 공평하게 강제된 구조의 부산물인 것이다.

  ‘가부장제 파시즘’은 사회 구성원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의 억울함과 권리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침묵하게 한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그런 거다’라며. 우리사회에서 ‘가부장제 파시즘’을 받쳐주는 커다란 대들보는 바로 ‘호주제’다.
  UN은 이미 두 차례나 “호주제가 여성을 종속적인 역할로 위치 짓는 가부장적 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강화시킨다”며 우리나라에 호주제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호주제란 말 그대로 집(家)에 주인(戶主)을 두는 제도다.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구성원들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함으로써 민법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제도인 호주제는 가족들을 주종관계로 규정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질서와 순종의 규칙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긴다. 태어나면 아버지의 혈통과 성을 잇고(‘父系血統主義’), 결혼하면 남편의 호적에 들어가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하는 부가입적제도(父家入籍制度)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가정에서부터 성차별 의식이 몸에 베이도록 만든다. 어려서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학습한 성차별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편견의 축적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계속 심화되고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 호적법 기록을 보면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아니라 연장자, 집안의 어른인 아내가 호주가 되었다. 또 친손자와 외손자에게 똑같이 재산분배를 하고 상속했으며, 제사도 아들, 딸이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두 살짜리 아이가 할머니와 엄마, 온가족의 호주가 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현재의 호주제는 일본이 1898년부터 시행한 명치민법에 근거한 제도로, 1908년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식민지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강제로 실행했던 것이다.
남자가 대를 잇고 제사를 물려받고, 장자를 우선하는 관습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지만 호주가 전권을 가지는, 그러니까 가족을 다스리는 주인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았다. 일본은 1947년에 이미 호주법을 전근대적인 남녀불평등법이다 해서 없애버렸다. 이렇듯 호주제 존치론자들이 말하는 호주제가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회는 이미 다변화되고, 이혼, 재혼, 홀부모, 미혼부모 등 다양한 가족형태들이 생겨났는데 현행 법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재혼한 어머니가 전 남편의 자녀와 함께 살더라도 주민등록에는 동거인으로 표기가 되고, 아이들이 새아버지의 성씨로 바꾸고 싶어도 현행 호주제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경우 새로운 형제들과 성을 다르게 씀으로써 왕따를 당하거나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이질감이 커서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고통은 엄청나다. 나아가 ‘후남이 귀남이’로 표현되는 아들선호와 남녀차별은 결국 심각한 성비파괴를 낳았고 지금의 아이들은 짝꿍도 없이 어린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몇 년 전에는 시골에서 내걸리던 것이 이제는 도시 한복판에서 공공연하게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매 맞는 아내가 60%를 넘고 성폭력이 세계 1위인 나라. 매년 3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는 나라. 무겁게 진 짐으로 3·40대 가장들이 돌연 죽음에 이르는 나라. 이 현상들의 바닥에서 호주제라는 음험한 괴물이 독기를 품어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호주제 폐지를 말한다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지난 찌는 여름날 노인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호주제 폐지 반대집회를 대구에서 열었던 걸 보면 대구는 ‘고도'(孤島)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현재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호주제폐지민법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호주제폐지는 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에서 모두 찬성 쪽의 당론을 모았으므로 곧 통과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법 개정이 1인 1적제든 가족별편제든 아니면 주민등록제도와 일원화시키는 방향이든 지혜를 모아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호주제 폐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다수가 소수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논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현행 호주제의 폐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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