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2년 반녹색 경제정책의 문제와 대안

 ‘참여정부’ 2년 반녹색 경제정책의 문제와 대안

  모두들 ‘정쟁을 그만두고 경제를 살려라’고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정작 무엇이 경제를 제대로 살리는 건지 그 내용에 대한 토론은 없다.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경제(經世濟民, economy)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란 뜻이다. 돈이란 그런 살림살이(인간답게 먹고사는 것)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백성들의 참여를 전제로 나라를 올바로 이끌겠다던 ‘참여 정부’ 출범 2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 그 경제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2003년 3월 27일에 발표된 ‘새 정부의 경제운용방향’이나 ‘2004년 경제운용방향’, 그리고 ‘2005년 경제운용방향’에서도 ‘돈벌이’ 나 ‘경쟁력’ 관점의 경제정책은 일관되게 계속된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

  최근의 기업도시(또는 민간복합도시) 논의는, 한편으로는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개혁정책 수행을 위한 수단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환경 개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의 개발특권 부여라는 ‘성장만능주의’의 정책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로서 재벌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 및 계열분리라는 기존의 제한적 경제개혁조차도 기업도시 건설을 계기로 전면 후퇴하게 되었다.

  특히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은 기존의 국토제도의 근간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제도적 반란이다. 더구나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경제자유구역법,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특화특구법 등은 그 어떤 법률보다도 법률의 위임이 크고 특혜의 규모 또한 크다. 골프장 건설 붐도 마찬가지다. 골프장이 지역경제에 대해 가지는 기여효과는 전국 골프장의 절반을 유치하고 있는 경기도, 그 중에서도 용인시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용인시의 어떠한 통계에서도 골프장으로 인하여 용인시가 ‘발전’의 계기를 찾았다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으며, 시민단체의 평가를 봐도 지역 민주주의로 인해 문제가 극단적으로 발생하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한 난개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곳이 오히려 용인시이다. 또 정부는 ‘한계농’이라는 이름으로 준농림지역뿐만 아니라 농림지역 조차도 골프장으로 전면 허가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골프장에서 사용한 제초제 등 농약으로 인해 골프장 수계에 있는 농가는 지하수와 토양이 심각히 오염되어 친환경농업을 할 수가 없다. 또 바닷가 가까운 곳의 골프장은 당연히 연근해를 오염시켜 수산자원을 죽인다.

  게다가 국토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이었던 신행정수도 건설에서도 한편으로는 수도권의 권력 집중 문제, 다른 한편으로는 투기 자본의 창궐 문제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행정수도 개발이 가시화되자 충청권에 창궐한 투기자본은 정말 눈꼴사납게 설쳐댔다. 예컨대 충남 연기의 한 지역에 고급아파트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분양신청을 받은 결과, 경쟁률은 33대 1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서울의 투기자본이 몰려 무더기 분양 신청을 한 것으로 현지의 실수요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환경파괴형 난개발의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2004년 2월에 나온 ‘농촌?농민 종합대책’은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1948년 제헌 헌법에서부터 현재 헌법까지 유지하여 온 경자유전 원칙마저도 무참히 깨는 것이다. 게다가 개발제한구역 내 사유재산 보호나 기업도시 등 국토균형개발 또한 지방정부 재정 확충과 같은 명분을 내세워, 1971년 이후 지속되어오던 그린벨트 지역을 날로 파괴해나가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근저에는 이른바 ‘1차 산업’으로 대변되는 농, 임, 어업의 발전은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 발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더해 무시하거나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개 이것을 발전이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건 발전이 아니라 파괴다.

  그런 면에서 이제부터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sustainable society)가 우리의 아젠다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속가능한 사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이고 다른 편으로는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실 이 둘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핀 바, 경제(經世濟民, economy)를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로 재정의(redefine)한다면, 참된 경제개혁 정책이란 민초들의 살림살이를 건강하게 재편하여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한 구체적 대안은 무엇인가? 그 밑그림(‘삶의 질’ 중심 구조혁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에서부터 산모나 아이나 돈 걱정 않고 가족과 마을의 축복을 받는 편안한 출산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도 유치원이나 각 급 학교를 다니는 데 돈 걱정 않고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두려움이나 염려 없이 마음껏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그런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구체적인 형태로 학습하게 해야 한다.

  일류고교, 일류대학, 일류직장 개념을 없애고 모두 원탁형 질서로 고르게 해야만 아이들이, 진정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고 그로 인해 살아가는 과정 매순간마다 행복을 느낄 것이다.
  3면 바다와 70% 산이 가지는 천혜의 장점을 살려내는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모순을 극복하는 전원마을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서야 한다.
  최소한 땅과 집이 투기나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땅과 집은 우리가 그 안에 살다가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삶의 터전이다. 투기 자본이나 그와 연루된 온갖 부정부패의 고리를 철저히 잡아내면(‘경제암행어사’ 제도가 필요하다), 그 돈만으로도 모두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질(건강과 여유, 인격과 평등, 공동체, 생태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나 경제 분야는 적극 살리고 확대하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자리나 경제 분야는 줄여나가거나 없애야 한다.

   ‘민주 정부’가 할 역할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이러한 삶의 질 중심 구조 혁신을 위해 자원을 재분배를 하는 일(지금처럼 과잉의 건설자본을 억지로 살리기 위한 불요불급한 국책사업 등은 낭비의 극치다)이요, 다른 편으로는 이런 혁신에 저항하는 수구 세력들로부터 참다운 구조 혁신을 수호하는 일일 것이다.
  동시에 풀뿌리 민초들도 ‘잘 산다’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면화한 돈과 권력의 논리를 털어내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참으로 더불어 사는 그런 사회 만들기에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글_강수돌 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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