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학교] 정의교실 1강 홍세화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

2009년 1기 시민학교 ‘경제교실’에 이어서 2010년 대구참여연대 2기 시민학교 ‘사회정의교실’이 지난 10월25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사회정의교실은 대구참여연대 주최로 5.18기념재단과 4.9인혁재단의 후원으로 11월29일까지 총8강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1강 강사로 오신 홍세화 선생은 두시간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만큼 열성적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시민학교 첫 포문을 연 홍세화선생의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라는 강좌를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   (강사:홍세화)

■  정리 : 김승주 상근활동가

“사 람은 편함을 추구한다. 남에게 불편함은 물론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면서까지 나의 편함을 추구한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말은 내 편함의 추구가 남에게 불편함, 고통, 불행을 주지 않아야한다는 말과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편함을 추구할 뿐,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런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물신 지배가 극성을 부리는 한국사회처럼 비교라는 말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와 내일의 관계를 견준다는 뜻은 사라지고 즉자적으로 남과 가진 것으로 견준다는 뜻만 남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다시금 ’그렇게 싸워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나‘라고 말하기보다 ’소수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는 편에 서려고 한다. – 홍세화 저 「생각의 좌표」머릿말 중에서

○ 사회정의보다 질서를 우선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왜 우리는 정의를 이야기 하지 못하는가?

– 왜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제 1조에 명시해 놓은 대한민국에서 연대, 나눔의 가치보다 경쟁, 질서라는 가치가 우리 안에 먼저 들어와 있을까? 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개념, 공익에 대한 생각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을까?

> 공화국의 어원은 res publica “공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에겐 역사상 군주제를 극복하고 근대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싸운 경험이 거의 없다, 인류 역사에서 근대 공화국의 건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군주의 사적 소유물’로소의 군주국 체제와 사회 곳곳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기득권 구조를 부숴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과업이었다. 군주국과 결별하기가지 인류는 지난한 투쟁 과정과 담론형성 과정을 거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공교육에서 민주공화국의 이념은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는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아니라, 방첩, 승미와 질서, 시장, 국익, 경쟁, ‘기업하기 좋은 나라’만 강조된다.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나라의 공적부분이 온통 사적 이익을 창출하는 장이 되어 버렸다.

– 왜 우리는 존재에 맞는 의식보다는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을까?

>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 한다”는 뜻은 단순 명료하다. 자본가는 자본가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본가 의식을 갖고, 노동자 농민은 노동자, 농민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농민, 노동자 의식을 갖는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 중 노동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주의 교육이 여전히 관철되는 한국의 학교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와 아무 상관없는 의식, 나아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장이다.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자식은 계층 상승의 기회를 위해 학교에 다니지만 절대 다수는 계층 상승 대신에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한다.

– 공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공정을 이야기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공정함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질서에 저항하는 행위 즉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한 표출로 이워지는 시위, 파업을 억압하기 위하여, 노동삼권을 주지 않는 현실, 노동삼권을 억압하는 행위에 대해 왜 우리는 입을 닫고 있는가?

>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은 대부분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다. 아무리 그악스런 자본이라 할지라도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생산을 멈추면 작동 될 수 없고, 소비자들이 힘을 합쳐 소비를 멈추면 작동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자본이 국가를 관리, 통제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데 성공한 탓도 있지만, 서민은 서민 전체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 물질적 손해를 보려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인 삼성의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하는 우리가 어찌 보면 삼성의 비자금에 1%를 보태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삼성을 불공정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 다수 사회구성원인 서민들이자신의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하고 살고 있을까?

> 옆으로 하나의 직석을 긋자. 그리고 이 횡선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조건이라고 부르자. 횡선의 위쪽에 있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아래쪽에 있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조건에 처한 것이라고 보자, 여러 나라들 중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 나라들은 거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횡선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 나라의 사회구성원들이 처한 삶의 조건을 분포도로 그린다면 선 위에 자연스럽게 누운 달걀 형태가 될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 사회는 아래 부분이 깨지고 종으로 서 있는 콜럼버스의 달걀 모습이다. 횡선 밑의 깨져 떨어져 나간 부분에 속한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고 있다. 횡선 바로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횡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경쟁하고 살고 있으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오늘을 저당 잡혀 살고 있다. 나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자아실현의 꿈은 사라지고, 오로지 물질에 관한 관심과 소유욕에 머문다. 모든 사람들은 아래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배타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권은 계란의 위아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양옆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8’자형이나 ‘눈사람’형태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 왜 우리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살고 있는가?

생각하는 동물인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태어났을 때엔 분명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배할 내 생각은 어떤 경로로 내 것이 되었을까?

– 나에게 다가오는 생각들이 내 삶을 위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또는 나에게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인지, 지배세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인지 판단 할 수 없는 동안에도 내 안에 스며들어왔다. 우리가 우리 안에 채우는 생각이나 주장, 또는 이념은 이 사회에서 강조되는 이 사회를 관통하는 것들로써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요구하는 지배적인 그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권력이 장악한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디어에 의해 넘칠 정도로 채워지는 의식세계는 내 생각을, 내 인식을, 내 감성세계를 가지도록 나두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내 생각은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배반하는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다. 80이 서민이면서도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를 이야기하고 있는 진보정당에 친화력을 가진 서민은 별로 없다. 18-16-14-12-10-8 이라고 나열된 숫자를 보면서 투쟁으로 얻어진 노동시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이것이 우리가 서민이라는 우리의 존재를 배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고집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자신의 존재에 맞는 생각, 의식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질문을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받은 교육경험에 맞게 보기를 보고 내가 지금 가진 생각은 다음 보기의 각 경로를 통해 얼마만큼 내 것이 되었을까? 이것을 돌아보면서 이 것이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1)폭넓은 독서 : 지금 살아온 사람들 중 책을 남긴 사람의 생각을 내가 ‘주체’적으로 참조하는 것
2)열린 자세의 토론 :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을 열린 자세로 참조하려고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것
3)직접경험 : 오감을 가진 주제로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직접 보고 겪고 느끼는 것
4)성찰 : 폭넓은 독서와 열린 토론, 그리고 직접 견문을 통해 만나는 뭇 생각들이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종합되고 정리되는 과정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체적으로 의식세계를 형성한 사람은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줄 알며,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Q1. 강의 중에 삼성 제품 불매운동을 예로 들으셨는데요. 그렇게 되어도 LG 등 대기업 또는 해외기업의 제품을 써야하는 현실에 먼저 번 언급하신 거대한 기업의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기가 힘들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신가요?(하성재)

A- 질문이 다소 근본주의적인 사고로 만들어진 것 같네요. 제가 그러한 내용을 강의 중 언급한 것은 일단 행동에 옮기자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제품을 무조건 적으로 불매하자는 것보다 적어도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가능한 한 피하자는 말입니다.

Q2. 교육에 대해서 남달리 강조를 하신 것 같은데요. 그 교육제도라는 것이 질서로 이루어져 있어 세습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끊어낼 수 는 없을까요?(조재형)

A- 현재 한국의 교육은 실제로 세습이 이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어요.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시민들 개개인이 그것을 올바르게 볼 줄 아는 눈, 즉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교육현장에서는 구조의 평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렇게 차츰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불안에 떨며 악순환에 안주하기 보다는 행동을 통하여 불안 요인을 줄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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