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중에서)
한반도에 전쟁의 포성이 멈춘 후 남북간은 체제경쟁과 각자의 성장에만 모든 힘을 쏟으며 어언 50여년 성상을 지내왔다. 마치 양자간에는 휴전의 분위기 보다는 평화의 분위기가 더 지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2002년 6월 두 여중학생이 미군 궤도차에 압사당한 사건이나 지난달 4월 북한에서 일어난 룡천역 폭발사건은 한반도에 아직도 고된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두 사건에 ‘우리의 미래’가 압사당하고 폭발되었다는 것을 알고, 전쟁이 주는 두려움과 상실감을 느끼려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진지하게 읽어야만 한다. 나폴레옹전쟁에 참여한 ‘안드레이’와 ‘피에르’가 겪는 좌절과 삶에 대한 회의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남북 서로간의 단절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신에 다름 아니리라. 한반도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지역이 전후의 냉전체제를 박물관에 소장시킨 지 언제인데 아직 우리는 그 망령을 두려워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는 사실 만만치 않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특히 미국의 대북강경책은 심지어 제2의 한국전쟁에 대한 두려움마저 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긴장상태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미국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다. 미국 내에서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고, 한반도 주변국들도 평화로운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는 상당부분 우리 어깨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2002년의 또 다른 6월(월드컵)에 우리는 한마음이 되었듯이, 자주와 평화의 분위기를 함께 고조시켜야 할 때이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안드레이’가 외쳤던 것처럼 “이제부터 평화의 시작이다”고 우리는 외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평화이다. 우리가 평화를 만들 때이다. 물론 이 평화도 우연에 의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남북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과 자기희생이 필수적일 게다.

그래서 우리에게 파괴와 좌절, 그리고 이산의 슬픔을 가중시켰던 이 잔인한 6월이 전쟁의 달로 기억될 것이 아니라 평화의 달로 기억되어야 하리라. 전쟁은 단절을 의미하고 평화는 소통을 의미한다. 최근에 부쩍 많아진 남북간의 교류를 상징하듯, 지난 50여 년간 단절되었던 경의선과 동해연선이 복원되고 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또 다른 소통의 시작이며, 이미 있었던 ‘마음에서의 소통’을 확인하는 것이다.

‘안드레이’와 ‘피에르’가 ‘나타샤’에서 희망과 사랑을 보았듯이, 룡천역으로 가는 구호물자에서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보는 것이다. 나아가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서로간의 인내와 사랑 그리고 자기희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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