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들이 먼저 혁신지향적이어야 한다.

과거 개발 년대 우리나라의 지방행정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 하에서 일종의 중앙정부의 지점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부연하면, 당시 지방관청은 중앙정부가 짜 놓은 각본에 따라 충실히 연기를 하는 연기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집권적 구조 하에서 지방의 공직자들은 주인의식을 갖지 못했고, 늘 상부의 눈치를 보고, 지침을 기다리는 피동적이고, 의존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지방 공무원들의 전반적인 문제해결능력은 매우 취약했다.

과거의 정부운영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무너져야

이와 같은 중앙정부 주도의 행정운영체제는 과거 우리국가가 당면한 과제가 비교적 단순하고, 안정적일 때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 행정환경은 현저히 달라졌다. 사회의 제반문제가 매우 복잡해 졌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부운영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무너져야 한다.

즉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머슴처럼 생각되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독자적인 지역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결집하는 것이다. 오늘날 지방정부는 매우 복잡 다양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대구시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하나만 해도 매우 엄청난 과제이자, 어려운 과제이다. 이는 과거처럼 중앙정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성격을 이미 벗어나 있다. 이 보다는 지역민 모두가 단합을 하고, 지혜를 모아 대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면 외국 기업이나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 이것이 성사되려면,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조성 되어야 하는데, 이는 임금구조, 노사관계, 기업문화, 지역민의 외국기업에 대한 태도, 길거리 운전자들의 운전매너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역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노력이 결집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혁신도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혁신도시는 혁신을 잉태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이는 결국 지역구성원 모두의 삶의 양식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얘기를 줄이면 이렇다. 오늘날의 지방행정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최대한 결집해 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지역의 총체적인 혁신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이 증대되고, 이것이 지역의 경쟁력으로 연계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지방행정체제가 좀더 열려있어야 하고, 참여를 기반으로 한 폭 넓은 대화와 토론 구조를 가져야 하며, 분권적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폭넒은 참여에 기반한 행정 매커니즘 취약해

이런 맥락에서 금년 한 해 지역의 지방행정을 평가해 본다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만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지역의 주요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있어, 다양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결정은 아직도 폐쇄적 공간에서 소수의 “누군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비해서는 형식적 측면에서 조금 나아진 면이 있으나,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대구시나 구, 군청에서 만든 각종 위원회는 대부분 “이빨 없는 호랑이”처럼, 형식적 존재에 불과하다. 인사위원회의 경우 자치단체장의 불합리한 인사권 행사나 잘못된 인사제도를 바로 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역의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은 지역주민이  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대폭 열어야 한다. 시가 어떤 일을 해야 되고, 어떤 우선순위로,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역 주민의 의견이 체계적으로 모아지고, 반영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 자치단체의 경우, 이와 같은 민주적 행정절차가 제도화 되어 있다.

폭 넓은 참여를 기반으로 한 행정은, 지방 정부의 행정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들이 최적의 효과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한다. 또한  자치단체가 결정한 사안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심리적 지지도를 높일 수 있고, 반면 저항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금년 한해 동한 지역에 있었던, 버스나 지하철 노조의 파업,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과 관련된 지역주민들의 점거농성은 이와 같은 참여 인프라가 취약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참여를 중시하는 행정은 또한 지역민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증대시킨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면,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노력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도록 만들고, 대신 사적인 이기주의는 최소화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집단 이기주의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좀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참고로, 참여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증대시키는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권위주의적 행정체계를 벗어야
둘째, 아직도 지역의 관청체계는 과거 개발 년대 시절의 “생각하지 않고, 뛰는” 군대식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엄격한 계급개념, 일 방향적 의사소통 구조, 극단적인 집권적 행정체계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행정체계는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질식시켜 버리고, 이 보다는 맹목적인 순응과 획일화 된 생각만을 강요할 뿐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지방행정은 혁신을 조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다양한 사고를 잉태하는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쉽게도, 지역의 자치단체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대구지역이 혁신을 주도해 나가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자치단체들이 먼저 혁신 지향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관청 내부의 작동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수립이후 계속 되어온 공직사회의 계급제를 직무중심으로 전환하는 일, 최종 행정 행위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 일(실무자에게 단독 결재권을 주는 일), 단체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는 일, 공직자들의 업무구조를 지식집약화 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방정부의 내부혁신을 이끌어 내는 작업도 지역주민과의 공조체계 속에서 이루어 져야 좀더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대구시가 구상하고 있는 “민관합동 시정부 혁신기획단”은 긍정으로 평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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