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선정국, 길을묻다(3)

2007대선 길찾기

과거 대선의 이맘때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올해 대선은 여러모로 묘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직대통령의 레임덕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몹시 특이하다. 4년 내내 죽을 쓰고 10%대의 지지율로 헤매던 대통령이 막판 1년간 가공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집권여당은 공중분해 되고 친노세력과 범여권이라 불리 우는 알쏭달쏭한 정치세력이 아웅다웅 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이합집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당장의 대선보다는 내년 총선에 살아남자는 각축전을 벌이며 지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둘이 합쳐 국민의 70%의 지지를 받는다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들도 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당 정치인들의 줄 세우기와 경선룰을 둘러싼 끝없는 싸움과 과거회귀적인 돈 정치로 날을 세우고 있다. 무슨 비전과 정책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킬지 이들 간의 싸움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정당은 보이지 않고 온통 후보를 둘러싼 추측성기사만 난무한다. 한 켠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대선이 범여권의 친노파, 비노파 한나라당의 이명박파, 박근혜파의 싸움이 될 것이라 한다. 그렇게 보면 이번 대선은 정당들간의 경쟁이 아니라 인물 중심의 파벌싸움이 될 모양이다. 이는 아무래도 정치의 퇴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빠진 채 후보중심의 이합집산을 반복할 것이라면 과연 정당이 왜 필요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소속정당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행보를 걸어온 노무현대통령 때문이다. 스스로 진보라 하고 개혁을 약속했던 노대통령이 한미FTA를 통해 약육강식의 미국식자본주의로의 대행진을 펼치고 있으며, 이 같은 변화무쌍한 보수행보가 한국의 상식적인 정당정치를 와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소위 친노파는 이제 한나라당의 보수세력과 본격적인 보수경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과거 뭉뚱그려 ‘진보개혁세력’이라 불리 우던 정치세력은‘친노’인지‘반노’인지 고해할 것을 강요받으며 낱낱이 흩어져 각자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이 핵분열의 핵심이 글로벌스탠다드로 위장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며 미국과의 정치 군사 경제 사회적 통합의 길로 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복지와 평화, 생태를 중시하는 사회통합적 국가, 북유럽국가의 한국적 적용으로 가자는 것인지의 선택에 따른 분화로 보인다. 어쩌면 이 혼돈 속에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될 희망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이합집산과 혼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고민해볼 만한 일은 과거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았던 인사들 중, 본격적으로 진보개혁적인 시민정당을 만들자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땅히 진보개혁적 지향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면 그런 정당을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민단체에 몸담았던 사람이라 해서 언제까지 시민운동만 하라는 것은 지나친 강요라 생각한다. 과거 시민단체가 벌였던 낙선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에 순수성을 훼손한다느니 하며 거품을 물고 비판하던 서경석목사가 뉴라이트단체를 이끌며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뛰는 것을 보며 표리가 부동한 인간이라는 비난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가 과거 시민단체 인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놓고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또한 뉴라이트연대니 자유주의연대니 하는 이름으로 본인들은‘시민단체’라면서 단체 본연의 정치적 독립성은 아예 포기하고 특정정당의 하부조직인양 움직이는 것은 단체를 설립한 목적과 다르니 이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특정정당의 집권을 위해 활동할 정치운동단체라면 그러한 목적을 공식화해서 활동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있는 바른 태도일 것이다.
따라서 ‘미래구상’과 같은 정치운동조직에 대해서 문제 삼을 일은 없다고 본다. 그들 스스로 새로운 정치주체세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치운동조직임을 표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들 조차도 인물중심의 정치적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념과 정책을 만들어내고 대중적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 즉 당장의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길게 보고 제대로된 진보개혁정당의 실험을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한나라당 집권저지를 최우선의 과제로 내거는 것은 원칙과 명분에서 벗어나는 행보이다. 스스로 한나라당 집권저지를 위한 일회용 정치세력임을 드러내어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얼마 되지 않는 시민사회운동의 동력만 훼손하고 사그라들 것이면 도대체 왜 그런 활동을 하자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 그럼 시민운동이 대선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벌일지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인데 사실 아직 우리의 대안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과거 대선 때도 시민운동이 그다지 뚜렷한 활동을 보인 적은 없다. 가져다 쓸 경험이나 사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을 더 열심히 하자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권력감시, 생태, 인권, 복지, 여성, 언론, 문화, 풀뿌리주민운동 등 각 단체의 활동을 열심히 해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욕심을 내면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대선이 우리사회의 비전을 합의해나가는 과정이라면 시민사회운동 역시 우선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시민사회운동의 집중적인 논의와 대안마련에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렴풋이 갖어 왔던 시민사회운동의 대안사회의 상이 여지없이 깨지고 있는 시기이다.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간에‘리틀아메리카’로 향하고 있으며 그 여파를 우리는 97년 이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농업은 공공연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노동자와 영세상인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핵심적 현상이라 할 것이다. 부동산의 양극화와 교육격차는 양극화사회를 고착화시키는 핵심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인, 재벌, 관료, 지식인, 언론인들 지배층 대다수가 우리사회의 미래대안으로 ‘미국식 자본주의’를 머리에 그리고 있다. 그 사회는 좋게 말해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이며 직설적으로 말하면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이다. 소수의 지배층은 대를 이어 승승장구하고 대다수의 국민은 방어막 없는 정글 속에 던져지는 사회인 것이다. 과연 이런 사회를 우리의 미래대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민사회운동은 함께 잘사는 사회를 향하는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단순히 시민단체 몇몇이 연합해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유권자의 목소리로 바꿔내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잘사는 대안사회를 향한 유권자의 요구가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더, 이슈가 되도록 하는 제대로 된 유권자운동이 필요하다. 나아가 각 정당, 후보들의 정책이 이러한 유권자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철저한 검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개발과 성장으로 호도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사회’가 대선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도록 만드는 유권자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글. 김민영(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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