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경제개혁

삼성과 경제개혁

전 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1. 문제의 제기: 재벌 권력의 등장과 통제

재벌의 경제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적어도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초기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총칼에 기반한 정치적 힘의 우위와 희소한 자원을 동원, 배분할 수 있는 경제정책 권한의 독점은 재벌에 대한 정부의 우위를 명확하게 규정한 기반이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역설적으로 이러한 힘의 배분은 서서히 재벌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우선 하나회가 명시적으로 권부에서 손을 뗀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군부는 87년 이후 서서히 정치적 통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정치권력은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서서히 인간의 탈을 쓰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재벌을 통제하던 하나의 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통제력이 붕괴한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자본축적과 경제자율화였다.  정치적 민주화가 재벌통제의 한 축을 붕괴시켰다는 점이 역설적인 것만큼 자본축적의 진전과 경제자율화가 재벌통제의 또 다른 축을 붕괴시켰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자본의 희소성이 줄어들수록 자원배분에 대한 통제권의 중요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경제자율화 추세는 일반적인 정부개입 범위의 축소를 통해 재벌에 대한 통제력을 추가로 감소시키는 경향을 초래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없을 수 없다.  정치적 민주화, 경제발전에 따른 자본축적, 경제자율화 등은 모두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보편적인 가치의 확산이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라는 부작용을 나을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필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사회 하부구조로서의 “법질서의 정비”가 사회의 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남의 나라 역사를 보고 배우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곁눈질로 배웠지만 그 밑을 관류하는 법질서의 발전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재벌 문제는 이러한 기형적 사회발전의 가장 현저한 표현이고 삼성 문제의 그 모든 문제의 백화점이다.  그래서 재벌 문제의 해결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개혁과 맞물려 있다.

2. 기형적 사회발전의 부작용인 재벌, 그리고 그 대표인 삼성

2007년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재벌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매우 직설적인 대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조직폭력배 동원 폭행 사건은 재벌의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재벌은 필요하면 폭력을 동원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하여 거의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재벌은 치외법권 지역인 것이다.
다음으로 현대자동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회사자금 횡령 및 배임사건을 살펴 보자.  이 사건에서 정 회장은 어느 정도의 자금을 사회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풀려 났다.  재판부는 짐짓 고민하는 척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한화 그룹 김 회장에 대한 판결보다 훨씬 더 후진적인 판결이다.
김 회장이 풀려난 표면적인 이유는 “부정(父情)”이었다.  아들이 맞고 왔으니 아버지가 폭력배 동원해서 대신 두들겨 팬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의 부정적 측면은 아버지 빽을 믿고 천방지축 날뛸 아들을 통제할 아무런 사회적 장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동차 판결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정 회장이 풀려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회헌납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에 대한 걱정이다.  정말 정신없는 판결이다.  우선 두 번째 이유의 논리는 재벌이 경제를 볼모로 할 경우 완벽한 치외법권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이다.  재벌총수는 무슨 짓을 해도 “그 사람 집어 넣으면 경제가 걱정이다”라는 말로 빠져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이유는 타당한가?  아니다.  사회헌납을 이유로 주주돈을 슬쩍 한 잘못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면 경영자는 언제나 주주돈을 슬쩍 하려고 할 것이다.  재수 좋아서 안 들키면 다 내 것이고, 재수 없어서 들키더라도 토해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토해 내는 것도 비영리 재단에 토해 내고 거기다 내 사람을 이사로 임명하면 사실상 토해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다.  비영리 법인으로 회사 지배력 강화하고 가끔 가다 사회사업 한다면서 적당히 좋은 일하면 이미지도 개선되니 일석 삼조이고, 꿩먹고, 알먹고, 그릇까지 슬쩍하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비리의 백화점이다.  폭력은 없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다.  국가 권력을 상대로 한 폭력을 잊었는가?  공정위 직원이 삼성계열사에 조사를 나갔다가 조사대상물을 빼앗기고 폭행까지 당한 적이 있다.  삼성은 명백하게 국가권력 위에 있다.  회사돈 슬쩍 한 것은 없는가?  있다.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중 백미는 계열사 쥐어짜서 비자금 만들어서 외국 미술품 사서 집에 걸어 두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행복한 눈물은 몰라도 행복한 웃음은 그 집에 넘쳐 났을 것이다.  사회 헌납은 없었나?  아니다.  오히려 사회헌납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원조는 삼성이다.  삼성은 2005년 엑스파일 사건이 터지자 사회헌납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런데 그 돈이 아까와서 재주를 피우는 것이 가관이다.  이미 사회에 헌납하여 자기 돈이 아닌 것을 다시 가져와서 자기 돈인 것처럼 또 한 번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다.  거기다가 온갖 편법 시비를 통해 딸에게 물려 주었던 돈이 다시 돌아오게 되자 이 돈을 위기탈출에 동원하는 비인간적인 모습마저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5%라는 절세 한도 초과룰 회피하기 위해 일부는 교육부에 기증하고 교육부가 삼성재단에 돈을 넣는 편법을 동원했다.  원래 존재하던 삼성재단의 이사들은 재단 목적사업에만 재원을 사용하라는 법적 의무를 저버리고 냉큼 그 돈을 다시 갖다 바쳤다.  도대체 교육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삼성 재단의 이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2007년 10월 29일 이후 터져 나온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고발은 비리 백화점으로서의 삼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떡검’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심지어 대법관까지 비리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의혹의 범위는 사법부를 넘어 행정부와 국회, 언론과 학계까지 광범위했다.  특히 앞으로 로스쿨이 정착할 경우 어쩌면 이미 대학을 소유하고 있는 삼성은 학계와 법조계를 한 손에 장악할 지도 모른다.

3. 법질서의 개혁,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재벌 문제의 해법은 사실상 이미 나와 있다.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상법, 증권거래법, 공정거래법, 금융규제법 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한 바지저고리도 아니다.  국가가 법을 제대로 집행할 용의와 능력만 있으면 재벌문제 특히 삼성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과거처럼 굳이 총칼을 들이대거나 계열기업 여신관리제를 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법대로”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의지와 계획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삼성이 무엇 때문에 검사 출신을 법무팀장으로 임명하겠는가?  삼성이 무엇 때문에 시시때때로 “떡값”을 검찰과 국세청 등에 돌리겠는가?  “법대로”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법대로 하기 위해서는 검찰과 법원이 바로 서야 한다.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 역시 자신은 삼성을 받들기 위해 법조에 입문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지키고 실현시키기 위해 법조에 입문한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정의의 전도사가 아니라 파렴치범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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