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웃으며 살아야할 이유

운영위원이신 이재성회원이 평화뉴스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옮겨 싣습니다.

2008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엄청난 생채기로 각인된 우리의 삶의 흔적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통으로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새해를 맞을 당시만 해도 ‘설마 괜찮겠지’, ‘아무렴, 무슨 일이야 있겠어?’, ‘역사를 어떻게 되돌려’라고 세뇌하면서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분노의 포도’를 삭이며 애써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웃음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일정한 조건이 만족될 때 15개의 안면 근육이 수축하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웃음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매우 기이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렇듯 웃음은 하나의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 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 예컨대 저기 앞서 가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도 있고,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나와 허탈하게 웃을 수도 있다.

철학자 칸트(I. Kant)는 웃음을 ‘한껏 부풀었던 예상이 갑자기 해소됨으로써, 즉 어떤 기대로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갑자기 풀림으로써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앞서 가던 사람이 똑바로 걸어갈 것이란 예상이 갑자기 무너질 때 웃음은 터져 나오고, 자신이 시험을 잘 볼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하지 못했을 때에도 웃음은 터질 수 있다. 소망도 하나의 예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 자신의 예상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웃음이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스펜서(H. Spencer)는 이런 웃음을 생물학적인 용어로 “의식이 굉장한 일에서 사소한 일로 불시에 전이될 때 감정과 감각이 신체운동을 발생”시킬 때 일어나는 웃음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S. Freud)는 심적 에너지의 억제와 소비의 차이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분석을 통해서 웃음을 발생시키는 기지나 익살 그리고 유머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쓴 웃음이라도 지으면서 소망했던 작은 예상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5월 쇠고기 수입 파동과 촛불 시위를 겪으면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 많은 생각을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반성은 우리가 기대했던 ‘설마’를 거뜬히 잠재우는 ‘썰렁’ 개그로 마무리되었다. 대운하 건설 추진, 종부세 폐지, 남.북한 관계 경색, 언론 장악과 통제, 한국 근현대사 역사 뒤집기,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 등으로 점철된 ‘민주화의 역주행’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피로감을 누적시키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황당’ 개그의 극치를 연출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금융위기로 국가 파산의 위기에 몰린 경제상황에서 ‘지금 주식을 사면 내년에 대박난다’는 차라투스트라의 예언자적 의지까지 첨가하는 ‘허무’ 개그도 선보였다. 이에 뒤질세라 조.중.동은 앞 다투어 ‘따뜻하고 인정미 넘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지면에 도배하며 허무 개그의 완성도를 더 높이고 있다. 가히 국민을 웃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런데 안면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었는지 웃음이 나지 않는다. 어느 개그맨이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외치지만 저들의 개그는 개그가 아니다. 거기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분노만 남는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과 자기 성찰이 없는 사회, 인간적인 염치와 배려가 없는 경제동물만이 물질적 풍요의 삶을 구가하는 사회, 현실의 이름으로 적절히 타협하며 누리는 삶을 합리적 선택이라고 강변하는 사회, 최소한의 정의와 상식 그리고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양심 없고 몰염치한 삶인가. 이런 사회에서 진정 웃으면서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러나 한갓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웃으며 살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비양심과 몰염치한 삶에 대한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우려면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웃음이다.

우리가 웃을 때 분비되는 엔돌핀이나 엔케팔린과 같은 물질은 생리학적으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건강 호르몬이다. 인간은 웃을 때와 감사를 느낄 때, 엔돌핀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에 자극을 받아 임파구의 생성이 활성화되며 면역력과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강화된다. 특히 웃을 때 많이 분비되는 이 엔돌핀은 모르핀보다 200배나 효과가 큰 몸속의 천연 진통제로 기분을 좋게 하고 통증과 근심을 덜어주는 신경 호르몬이다. 육체적 고통으로 통증이 심한 사람도 웃으면 강력한 천연진통제인 엔돌핀이 분비되어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엔돌핀이 많이 생성되지만, 우울하거나 슬프면 엔돌핀과 반대의 효과를 내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장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웃음은 의학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건강을 담보하는 동력이 된다. 웃음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친밀하게 해주며, 개인의 억압된 감정을 발산해 감정을 정화해 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인간과 인간의 마음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웃음으로 자신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강하게 키워나갈 때 분노와 슬픔에 빠지지 않고 내일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새해를 새로운 희망으로 선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여기서 크게 웃을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웃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재성 칼럼 3] 이재성 / 계명대 교양학부 철학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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