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정신대할머니 故김분선씨 영결식 대구지역 시민사회 단체장으로 치뤄져

정신대할머니  故김분선씨 영결식 대구지역 시민사회 단체장으로 치뤄져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한 많은 일생을 살았던 故김분선할머니의 영결식이 12일 오전9시 대구 곽병원 지하강당에서 조문객과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대구지역 시민사회 단체장으로 치뤄졌다.
방광암․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 지난 10일 별세한 故김분선할머니는 1922년 경북 칠곡에서 1남4녀중 장녀로 태어나 만15세가 되던 1937년에 친구와 나물 캐러 갔다가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다. 대만과 마닐라 등지에서 위안부생활을 하던 고인은 해방 전인 1944년에 귀국하여 9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정신대위안부문제에 적극 가담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정신대관련 재판방청, 다큐멘터리 ‘숨결’출현,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집회참석, 미국에서 진행중인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자 집단소송’ 원고단, 1965년 한일협정 문서공개 촉구를 위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100인 원고단 등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많은 활동을 해왔다.

영결식에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일반 조문객, 취재진 등 1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영결식사를 했던 ꡐ미군기지되찾기 대구시민모임 대표ꡑ인 정학씨는 ꡒ남은 사람들이 어머님의 분노를 반드시 씻겨드려야 한다ꡓ며 정신대위안부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을 촉구했다. 고인과 같이 정신대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용수할머니는 조사에서 “우리가 이 운동을 시작한 지 13년이나 되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일본정부에 대한 분노와 우리정부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다.

조사중에 이용수할머니는 몇 번이고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고, 생전의 고인을 보살폈던 재가자원활동가인 천혜진씨는 조사를 하며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한동안 말을 잇질 못했다. 조문객들 중에도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인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김기홍(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회원)씨는 그녀가 고운 얼굴에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멋진 할머니였다고 말한다.
고인의 살아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 속에서 김분선할머니는 연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왜 사람들에게 고맙냐는 질문에 “나를 사랑해 주어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인의 유해는 칠곡 현대공원에 안장되고, 혼백은 영천 은혜사에 안치되어 49제를 지내게 된다.

머어먼 이국땅에서 새겨진
저, 가슴 깊은 속 족쇄도
저, 피맺힌 회한의 세월마디마디
연두빛으로 풀어내어 꽃보다 고왔던
당신의 영정에, 엽전열닷냥
노래속에 젖어오던 눈빛으로
두손모아 바칩니다.

짧은 만남과 긴 이별앞에서
두드러기처럼 솟아오르는
붉디붉은 아픔에 목놓아 불러봅니다
김자 분자 선자, 김분선 할머니
꽃보다 고왔던 당신
부디, 부디, 편안히, 안녕히 떠나세요
부디, 부디, 편안히, 안녕히 떠나세요

김길녀시인의,ꡐ故 김분선 할머니의 영전에 바칩니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당신께ꡑ中에서..

글_이상엽 자원활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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