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 이 형 기

낙화

이 형 기 (1933 –      )

가야 할 때가 언제 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 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 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지난 일백년간의 그 참혹한 냉전의 세기에서 죽고 죽이던 세월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무시무시하던 세월들을 다시는 만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돌아보면 어느새 저만치서 검은 그림자들이 질주 해 오는 것을 목도 하게 된다. 이 불안의 그림자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제 그 검은 그림자를 막을 수는 없단 말인가? 흰 광목이라도 떠다가 차일이라고 치면 어떨까? 어디 땅속에라도 파고들어 갈까? 물속에라도 들어갈까? 하늘위로 날라 가버릴까? 도저히 기다릴 수없는 시대, 이 슬픈 나라에 한달에 일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이제는 대기업의 총수까지 막다른 골목으로 치 달아 가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 횡설수설해야 하는 시대에 유미주의적 서정시 한편을 맛보고자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일 사업을 일구던 故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분단의 재물이 아니라 통일의 씨앗으로서의 값진 희생이 되기를 서원 해 본다.

기다려야 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는 이는 얼마나 야속 할까?

비운의 선비 황현은
나라가 망하는데도
지식인 한사람 쯤 죽지 않는대서야! 라고!
그는 절명시 한편 남기고
향기로운 비상 한모금 머금은 채
그렇게, 그렇게 아주 그렇게 떠나갔다.

통일 앞에서 그 또한 그렇게 간 걸까?
아! 어느 제3국의 여로,
플레트홈 문턱에서
바바리 코트 자락을 부여 잡고
원달라 기브 미
원달러 기브 미
하며, 까만 손을 내미는
어린 소녀의 눈망울이
차라리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더러운 정치꾼들!
그들은 막다른 골목길에서도
협박으로 등을 치고
수 백억원의 돈을 농낙 하고
덤탱이를 씌우는
시정잡배 보다 못한
참으로 더러운 것들!

그는 그들에게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길래
살아 생전에 주고 주고 또 주고
하나 밖에 없는 목숨까지 주었을까?

그래, 폭풍의 언덕을 비켜 서면
분노의 금강산 !
분노의 의사당 !
분노의 검찰청 !
분노의 청와대 !
그것들이 없는, 가야 할 때가 아닌
인적이 드문, 홀로 가야 할 길을
그렇게, 아주 그렇게 떠난지도 모를 일이다.

向主一片丹心이여
向主一片丹心이여
不忘이로다 ! 不忘이로다 !

글 _ 이상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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