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표현에 대한 관용의 문화 필요

표현의 자유

최근에 민주노총 게시판에 올라온 김일성 찬양 동영상이 큰 이슈가 되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 일간지들이 이 사건을 모두 게재했고, 언론에 뜨자 경찰 공안부서가 수사에 나서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사실 그 동영상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긴박한 위험성도 없었을 뿐더러, 쌍방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의 속성상 그 동영상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오히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상·표현을 제약하고자 하는 국가 권력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물론 경향적으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많이 신장되고 있다. 이제 ‘표현에 대한 규제’는 정치적인 표현보다는 ‘성적 표현’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된 명분은 ‘청소년 보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비인중학교 미술교사인 김인규씨의 홈페이지에 대한 논란이다. 미술 작가이기도 한 김인규 교사는 자신과 부인의 누드를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이를 ‘청소년 유해정보’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드 사진은 ‘상품화된 성’을 비판하는 맥락에서의 ‘몸’을 보여준 것으로 사실 아주 ‘교육적’인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표현의 특성

정치적인 내용이든, 성적인 내용이든 사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그 역사가 길다. 떠한 사회든 ‘모든 표현’을 허용하지는 않으나, 허용되는 표현의 폭은 결국 그 사회 구성원의 문화적 깊이에 좌우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표현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 속성 상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터넷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부여하였다. 과거의 표현은 신문, 방송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정제된’ 표현이거나 예술적 표현이었으며, 이러한 표현을 생산하는 사람은 언론인이나 예술가 등 매우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대중들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예컨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욕설같은 것-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와 같이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둘째, 인터넷은 그 속성상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책이나 방송 등은 이후에 판매 금지나 회수 등이 가능하지만, 인터넷은 설사 원본을 삭제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곳에 복사되었는지 알기 힘들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사후 규제를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정부가 사법적 판단 이전에 ‘행정적 규제’를 하고자 하는 근거이다.

셋째, 모두가 인식하다시피, 인터넷은 ‘쌍방향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이 일방적으로 어떤 내용을 독자나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적인 비판이 가능하다. 따라서, 어떠한 내용이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시정되거나 혹은 비판받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인터넷이 다른 매체에 비해서 보다 폭넓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넷째, 인터넷을 통해 모두가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전 국민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규제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게 된다. 또한, 한번 표현하면 매체에 고정되는 다른 매체와 달리, 인터넷은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홈페이지의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그 속성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홈페이지가 ‘청소년 유해매체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부의 ‘검열’은 계속되고 있다.

90년대 PC 통신 시절부터, 네트워크 상의 표현에 대한 정부의 ‘검열’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접속 차단, 홈페이지 폐쇄나 글 삭제, 표현 주체에 대한 구속, 내용 선별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접근 제한 등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네트워크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존재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모든 표현을 허용하라’가 아니라, ‘정부의 검열’을 반대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며, 따라서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사법적 판단과 절차에 근거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02년 6월 27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큰 의미가 있다. 과거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정부가 ‘불온통신’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불온’을 ‘불법’으로만 고친 채 ‘정부의 규제권한’은 존속시키는 법 개정안을 그 해 말에 상정하여 통과시켰다.

다른 사람의 표현에 관용의 문화
분명 모든 종류의 표현이 허용되기는 힘들다. 특히, 성폭력적인 내용, 인종 차별적인 내용 등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을 수반하는 표현은 일정정도 규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표현이 규제되어야 하는가를 ‘행정부 관료’가 ‘임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최소한 사법적 판단에 근거해야할 것이다. 보다 기본적으로는 각 ‘공동체의 자율’에 판단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예컨데, 성적인 표현, 상업적인 광고, 금기시되는 표현 등을 어느 정도 허용할지는 사이버 상의 해당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란 기본적으로 ‘내가 적대시하는 표현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정할 것이며, 내가 싫어하는 표현을 인정할 때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표현도 인정하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표현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더욱 확대되는 것이다. 어쩌면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재의
인터넷 문화는 우리 모두가 더 성숙해지기 위한 과도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 정보공유연대 IPLeft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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