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바란다.

17대 국회에 바란다.

탄핵심판, 거여견제, 거야부활, 노풍(老風), 박풍(朴風), 물갈이, 판갈이 등 말 많고 탈 많았던 17대 총선이 지나갔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갖가지의 덫에 나름대로 동의하여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늘 그랬듯이 침묵의 카르텔을 다시금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침묵이 당선자들을 거만하고 오만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은 거대한 시대의 물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국민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민은 소박하다. 소박한 요구조차 받들지 못하면 정치권은 또다시 버림받을 것이다. 정치는 실종될 것이다. 국민들은 싹수 노란 떡잎이 아닌 생명력있는 파란 새싹을 보고 싶어 한다. 국회의원이 서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돈과 권력을 향유하는 자리가 아닌 배고프고 피곤한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특권을 버리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자.

부당한 정치자금을 받아도 동료의원들이 방탄조끼가 되어 국민들의 비난의 총알을 막아주고, 심지어는 구치소에 갖혀 있는 범죄자까지도 탈옥시키는 과거의 치욕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과감히 버리길 바란다. 특히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상시개원제의 도입이 오히려 범죄자 은신처를 만들어주는 꼴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자신을 선택해 준 유권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부정부패에 물들고 국회를 돈벌이의 장으로만 이용하는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소환제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법제정의 문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 설사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재신임을 물으면 된다.

선거운동과 같은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선거운동할 때 후보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재래시장과 상가, 지하철 역사 등이다. 지역구 유권자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 소문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국회 등원할 때 검정색 고급 승용차가 아닌 지하철과 버스,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는 국회의원이 있길 바란다. 주말과 휴일에 가족들과 함께 동네 재래시장과 할인마트에서 저녁장을 보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길 바란다. 이미지 정치와 이벤트가 아닌 국민의 여론과 바람을 삶의 현장에서 수렴하고 토론하는 정치인이 되길 바란다. 서구 선진정치인의 모습이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얘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몸과 마음이 아래로 향하길 바란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한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존재는 가난한자, 고통받는 자의 실존을 망각하기 쉬운 자리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관료를 만나 접대받고 경제인을 만나 고급의 술잔을 기울일 때 그 이면에는 고통 받는 서민이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재경부 관료를 만나 부동산정책을 협의할 때 강남의 고층 아파트 뒤에 가려진 판자촌의 이웃이 있음을, 중소기업 대표자들과 만찬할 때 밤늦게까지 기계를 돌리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있음을, 보건복지부 관료와 국민복지를 얘기할 때 버림받은 아동과 학대받는 노인이 있음을, 교육부 관료와 교육개혁을 논할 때 엄청난 사교육비로 가정이 파탄난 백성이 있음을, 농담 한마디 내던지며 휴식할 때 억압받는 여성과 동성애자가 있음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개발을 논할 때 우리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고 있음을, 자신의 실존에 안주하지 말고 그들에게 몸과 마음이 향하길 바란다.

우리는 싹수가 노란 정치인을 바라지 않는다. 세살 버릇을 여든살까지 가져가는 정치인은 더 이상 없길 바란다. 과거의 치욕을 과감히 털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새싹을 보고 싶다. 지금은 거창한 이념과 정책을 바라고 논하기에 앞서 인간의 근본, 정치의 근본, 위임자로서의 근본을 논할 때이다. 근본을 세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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