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외설- 김영철회원

김영철회원(계명대 경제학과 교수)이 지역의 인터넷 뉴스 평화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양해를 구해서 옮겨 싣습니다.

자본주의와 외설

사람 중에 만나면 피곤한 이들이 있다. 나로서는 원리주의자를 만나면 몹시 피곤해진다. 내가 말하는 원리주의자는 모두가 아는 기본적인 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들고 모든 논의를 그 안에 가두어두려는 사람이다.

가령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시장거래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시장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대학교 1학년 경제학원론을 배우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둘 수는 없는 법이다. 이른바 시장실패라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도 경제학원론에 나온다.

그러나 시장 원리주의자는 어느 경우에서든 시장의 절대적 효율성만을 강조한다. 시장 원리주의자는 자리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시장은 좋고 규제는 나쁘다는 똑같은 말만을 되풀이한다. 시장 실패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와서도 그들은 어김없이 시장 원리를 설파한다. 시장 실패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시장의 일반적인 효율성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다만 시장 원리라는 것을 교조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시장 실패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자리에서 시장 원리의 장점에 대해서 마치 혼자만이 알고 있는 듯 시장의 절대적 효율성에 관해 핏대 올리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해보라. 피곤이 갑자기 몰려옴을 느낄 것이다. 누군들 시장원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모르랴. 다만, 논의를 원론적 수준에서 한 단계 높여서 시장 원리의 문제점을 이야기해보자는 것일 뿐. 시장 원리주의자는 논의가 복잡하게 변용되는 과정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논의의 수준이 원론을 뛰어 넘어 심화, 진전되는 것을 마치 시장 원리를 전복시키는 음모로 착각하고 이러한 논의 자체를 몹시 불안해한다.

이런 상황에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시장원리주의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힐끗힐끗 서로 눈짓을 나누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나는 수밖에. 이러한 원리주의자들은 대체로 스스로 사명감에 불타 있는 숭고한 행동주의자의 면모를 띄고 있어 잘못하면 한바탕 난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장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여자 고등학교 앞에 출몰하는 전설의 바바리맨처럼 스스로 시장 원리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아무데에서나 발가벗은 속살을 마구 드러내고 있다.

70년대 후반 대학 시절 친구들과 돌려 읽었던 마르쿠제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외설적인 것은 창녀가 음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을 뽐내는 것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는 수치스러운 것을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외설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시장 원리주의자의 무모한 커밍아웃이야말로 가장 외설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원리는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경제학에서 이른바 시장 효율성을 의미하는 파레토 최적의 개념은 초기의 자원 배분의 불공평성에 대해서는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초기의 불공평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만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의 불공평한 현실에 대해 시장 원리주의자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쉽게 외면해버린다. 그래서 시장 경쟁에서 효율성을 발휘하여 이기는 사람이 항상 가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 경제를 지향하기 위해서 그 방안으로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시장원리가 작동되면 한국사회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조건이 확보된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하 각 기관에 규제 완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수립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 확대를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는 이미 철폐가 결정되었다.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한 교육평준화 정책도 대부분 철폐될 예정이다. 수도권 집중완화와 국토균형개발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도 규제 완화라는 이름아래 용도 폐기될 운명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시장 실패는 교과서에나 찾아볼 수 있는 죽은 개념이 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지난 1월 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을 주장하여 주목을 끌었다. 빌 게이츠는 시장경제는 구매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효율적이라고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꼬집는다.

그 예로 1년에 수백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말라리아 같은 질병보다는 대머리 치료제를 만드는 데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이 투입되는 현실에 대해서 말한다. 빌 게이츠는 부유한 사람만이 이익을 챙기는 자본주의 경제를 가난한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것은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한국의 시장 원리주의자는 이러한 빌 게이츠의 주장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선진국의 배부른 부자가 말하는 공상에 귀 기울일 시간과 여유가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 되려면 빌 게이츠가 말하고 있는 시장경제에 대한 이러한 정도의 성찰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장 원리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국가적 아젠다로 삼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 되겠다는 의욕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외설이다. 경부운하 건설과 관련하여 궤변을 늘어놓는 토목 공학자에게 영혼 없는 과학자라는 비난이 집중되고 있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 준동하고 있는 영혼 없는 시장 원리주의자에게 오히려 더욱 극심한 피곤함을 느낀다.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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