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故 허세욱님의 명복을 빕니다.

[한 영화감독의 추도사 ]

이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고 말했던 당신, <동료들이 비정규직이니 나를 위한 모금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던 당신, 허세욱. 결국 당신은 세상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제도 오늘도 당신을 보았습니다. 버스 안에서 당신을 보았고, 지하철 안에서, 택시 안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들녘에서, 수많은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당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나는 그제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당신의 미소를 보았고, 그제서야, 당신의 온 몸이 불길에 휩싸일 때 당신이 느꼈을 그 유일한 고통과 유일한 외로움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당신의 마지막 미소는 그런 나를 늦었다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내 자신을 버린 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철거촌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던 거리에서, 대추리에서, 쫓겨나고 맞아죽고 몸을 불살라야했던 수많은 당신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불러내고 기억할 것입니다.

잠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피 묻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가 일구어온 민주주의를 저 청와대의 오만하고 방자한 권력자가 가꾸고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당신이 미소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잊지 않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정부는 우리의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원했던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예의는, 그들의 친절은, 오로지 외세와 자본가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살아온 그 어떤 정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지금이 더욱 폭력적이며 교활하고 야비하고 잔인한 시대라는 것을 결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믿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을 태우고 허공으로 날아간 불길은 내 속에, 수많은 우리들 속에 당신의 미소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어 또 다른 당신을 키워내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허, 세, 욱 열사여. 이제는 부디 편히 잠드소서.

– 2007년 4월 18일 영화인 김경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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