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키드의 소박한 꿈-김중기 ‘필름통’ 통장

“우리는 시간과 공간으로 둘러싸인 상자 안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그 벽에 난 창문이며…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로저에버트 –

1. 낯익은 향촌동, 그러나 낯선 예술극장 ‘필름통’.

경상감영공원 앞에 있는 씨네 아시아에는 향촌동의 몰락과 함께 젊은 청춘 남녀들의 발걸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향촌동은 대구의 50대 이상의 해방구이다. 경상감영 공원은 장기판을 중심으로 훈수꾼과 구경꾼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 무료 입장객의 시선 탓에 장기판의 선수들은 때아닌 긴장을 해야한다. 주위에 성인텍만 줄잡아 다섯 개 이상이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돼지 국밥집이 주류인 동네이다. 씨네아시아 일층에 자리잡은 롯데리아에는 다른 패스트푸드점과는 다르게 젊은이 보다는 머리하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전국에서 콜라보다 커피가 더 많이 팔리는 유일한 곳 일게다. 이런 향촌동에 얼마전 신선한 플랜카드가 걸렸다. ‘필름통’에서 주최한 “뤼미에르에서 현대까지’라는 영화특강 안내 플랜카드 이다.
대구에서 대중적 영화 강연회가 처음 일뿐만 아니라, 강사 진영 역시도 탄탄해 한 눈에 주목을 끌었다. 이 행사를 기획한 ‘필름통’에 대한 궁금증에 다짜고짜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도 김중기 통장님 (필름통 대표를 통장이라 부른다.)은 흔쾌히 응해 주셨다.

2. 우리 시대의 문화적 이단아 씨네 키드 김중기.

80년대 문화는 저항과 술의 문화이다. 모순은 술을 필요로 했고, 술은 저항을 조직하였다. 술판은 울분과 토론의 장 이였으며, 바리케이트 없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저항과 술문화로 대변되는 그때에 영화는 독재를 선전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3S 정책의 하나로 여겨질 뿐 이었다. 386의 문화적 취약성은 이때부터 내재된 것이리라. 그러나 이때에도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고, 영화에 미친 이들은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한국 영화계의 중심 세력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매일신문사의 기자로서 10년 이상 영화 관련 기사를 써 온 김중기 통장의 지난날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 시대의 문화적 이단아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라는 영화 속 명길과 병석과 같았을 것이다. 미친 듯 영화에 대한 집착으로, 영화를 보고 공부를 했을 것이다. 기억에서도 가물한 시민극장, 사보이극장, 동아극장을 전전하면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으리라. 불량학생은 아니었어도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열정은 84년 군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한 체, 2년간 충무로에서 영화 제작를 위해 일선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충무로가 어디 만만한 곳이기야 했을 것인가? 이제 영화 제작자로서는 실패(?)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은  ‘필름통’를 통해 대중문화 운동으로 다가가고 있다. 불혹에 나이에 부는 무서운 바람이다.  

3. ‘필름통’의 “통’를 통한 마인드 엿보기.

나는 필통에 대한 추억이 있다. 지금처럼 세련된 필통이야 아니지만, 필통 뚜껑을 열면 잘 깍인 몽땅 연필과 지우개, 칼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가끔 칼로써 연필을 깍고 싶은 충동도 이 추억의 힘이리라. 통이란 ‘담는다’는 기능적인 것을 넘어 ‘소중한 것의 집합체’라는 가치도 포함하고 있다. ‘필름통’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어떤 영화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즉, 기대와 설레임으로 뚜껑을 열어보는 것이다. 또 이 ‘필름통’ 안에는 어떤 영화도 담을 수 있는 개방성과 친숙함이 있다. 우리는 예술전용 극장 하면 머리 아프고, 난해한 곳이라는 선입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름통’의 김중기 통장은 예술영화란 소박함과 감동, 따뜻함이 있는 영화로 정의한다. 가족이 함께 즐기고 토론할 수 있는 영화,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대화하는 재미, 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영화문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영화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기 바쁜 문화를 극복하고자 한다. 영화보기와 학습과 만남이 어우러진 문화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감독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획단계이기는 하지만, 어린이 전용관을 만들어 어른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영화이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영화, 극장주의 상업적 이유 때문에 대구에서 는 상영조차 해보지 못한 영화들을 대중들과 만나게 한다는 것이다.
  
4. 문화 게릴라 ‘필름통’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필름통’의 ‘대중을 향한 열림’은 아직 ‘대중에 의한 열림’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인 영화시장에서 1년에 고작 두세편의 영화를 보는 30-40대를 움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질적 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완고한 대구의 문화적 보수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영화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복합극장의 대안극장으로서 전통극장은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실, 회원확대와 선전매체의 개발로 사업을 확대, 발전 시키고자하는 ‘필림통’의 앞날은 그리 평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화적 자생성과 대중성은 결국 소수 선각자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때문에 “문화의 숙주가 영화”라고 말하는 오만한 문화 게릴라 ‘김중기와 필림통’이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향촌동에 걸린 그 신선한 플랜카드 만큼이나 새로운 문화적 향기로 대구를 뒤덮기를, 대안의 영화문화로 대구의 문화지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_박근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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