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4·15총선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로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 그리고 탄핵심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에 잇따라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로 곤경에 처해 있다. 노무현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두달여 전만 해도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기록한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국민들이 정치인으로서 그의 진실성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유리한 선거국면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두 아들의 병역면제 건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진실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누르고 다수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진실되다고 많은 유권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한나라당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차떼기’로 선거자금을 모금했다는 사실이 들통난데다 합당한 근거 없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다. 더구나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이 집권당으로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진실을 은폐한 여러 악행을 잘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차떼기 모금이나 탄핵사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한나라당을 외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적지 않은 국민들이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총선과 탄핵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 터진 일련의 사태들, 즉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혼선에서 시작하여 이라크 파병문제, 그리고 장복심 의원의 금품 수수건에 이르는 여러 사건 때문에 과연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정치적 진실성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측은 이런저런 사태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치부하거나아니면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고 언론이 왜곡해서 보도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억울하게 진실게임에 휘말려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이며 노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최고권력자라는 점이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획득했다는 것은 국가를 운영할 책무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집권세력은 그 누구보다도 국가운영과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무한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의 진실성을 근거로 해서 무한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할 것이다.

아무리 야당이 공격하고 언론이 집요하게 비판해도 집권세력이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 정책 하나하나가 진실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난다면 결국 국민들은 집권세력을 신뢰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집권세력이 권력을 제대로 장악한 지 불과 석달도 못되었는데 진실성을 증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짧다고, 그리고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더 이상 권위주의 정권 하의 멍청한 국민이 아니다. 오늘날 국민은 그저 국가의 지시나 명령에 동원되는 수준의 단순한 국가구성원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미 그것은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증명된 바 있다. 때문에 이제 집권세력은 무슨 의혹이 있을 때마다 이리저리 핑계대거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말고 국민들을 상대로 그 진실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 길만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살 수 있는 길이다. 동시에 개혁세력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이 나라에 주도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기대처럼 진실게임에서 패배하지 않고 진실성을 입증해 낸다면 개혁세력들의 입지와 공간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신뢰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04-07-07 11:32:44 입력

백승대<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 이글은 영남일보 7월 7일자 “영남시론”에 개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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