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친일청산’을 주장하는가?

십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는 사라졌지만, 과거사정리문제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뜨겁다. 정치권에서는 과거사정리의 취지와 방법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과거사정리에 찬성하는 입장하는 입장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맹목적으로 앞만 보며 너무 숨가쁘게만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놓치고, 떨어뜨린 것은 없는지 한번쯤 차분히 돌이켜 봐야할 시점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정리되어야할 과거사 중에서도 친일진상규명이 핵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암울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이 물음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국은 조선후기 이래 추진해온 자주적인 근대화운동을 바탕으로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할 시기에 또 다시 외세의 지배로 민족의 분열과 국토의 분할을 초래한 분단체제가 형성되었다. 민족의 고통과 수난을 강요한 식민지, 분단체제가 형성된 가장 큰 원인은 제국주의의 침략이었다.
아울러 35년간이라는 장기간의 식민지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분단체제의 형성과 유지에는 제국주의 침략에 적극 호응하고 협력한 반민족세력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반민족세력은 일제 식민지하에서는 ‘친일파’였으며, 해방정국과 분단체제 하에서는 ‘친미파’였다. 그렇다고 친일파와 친미파는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니라, 친미파의 핵심은 해방 후 친일파가 생존을 위해 새로운 외세에 의존하려는 동일 집단이었다.

친일파처단은 절호의 시기였던 해방정국과 정부수립 직후 민중의 열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를 적극 옹호하고 육성한 미국의 대한정책, 정치세력의 정략적 이용, 이승만정권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일파처단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한국현대사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정부수립 후 친일파는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반공이데올로기로 은폐시키고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에 충성을 다하며 독재정권의 영속을 추구했으며,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앞장섰다.

또한 친일파가 단죄를 받기는커녕 권력의 요직을 장악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제 분야에서 지도층임을 자처하며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엄청난 의식의 혼란을 초래케 했다. 즉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상식은 물론 사회 정의가 무너져 가치관을 극도로 혼란에 빠뜨렸고,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기본으로 삼게 했다.

아울러 일제시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국주의를 교육받은 친일 군인과 민족해방운동가를 고문 등으로 탄압했던 친일 경찰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여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각종 선거에 개입하여 부정을 저지르고, 민주주의의 요구를 압살하는 등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트렸다. 또한 일제시기 민족의 역량을 무시하고 제기된 민족개량주의가 변형되어 경제 발전과정에서 민족문제가 배제된 근대화 지상주의의 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었으며, 군국주의 정신의 발로인 밀어붙이기 식의 형태를 만연하게 하였다.
          
심지어 친일파는 권력은 물론 사회 모든 분야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후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독립 운동가를 민족반역자로 몰아 처단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국이었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설이 널리 퍼졌다. 최근 조사에서 독립유공자의 후손 10명 중 6명이 고졸 이하에다 직업도 없이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 속설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해방 후 단죄되었어야할 친일파가 오히려 사회 전 분야를 주름잡으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회, 자신은 물론 가족의 희생까지 기꺼이 감수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이 탄압받고 소외되어 온 사회.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 사회, 이것이 정녕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처럼 친일파의 처리문제는 일제시기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여 무너진 민족기강을 바로 세우고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나타난 민족문제, 사회문제의 발생 근원에까지 닿아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친일파는 자연적인 수명이 다해 사라졌지만,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일제 잔재의 처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전히 유의미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친일진상규명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해방 후 친일파처단이 무산된 것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이를 민족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정략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지난 16대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필요한 예산을 전액 삭감시키자, 국민의 힘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 데서 보듯 친일파처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뜨겁다. 이는 지난 3월 2일 누더기 법안으로 통과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의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과된 법대로 라면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규명하기보다는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마련한 법개정안은 법이 발효되기 전에 반드시 통과되어야한다.  

발전적이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명쾌한 정리가 필수적이다. 오욕과 굴종의 시대였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독립유공자를 예우하고,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규명하지 않는 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름이 아닌 이해득실 여부라는 믿음이 계속되는 한 국가가 또다시 위기에 처했을 때 제2, 제3의 친일파가 나올 뿐 누가 독립운동을 하겠는가.

글_허 종(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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