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올해 몇 개의 큰일을 해 내었다. 한국민들에게 올해만큼 ‘헌법’ ‘헌법재판소’라는 말이 자주 들린 해는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10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이하 ‘특조법’이라 약칭함)이 위헌이라며 서울시 의원 50명을 비롯한 169명이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하여 이유가 있다며 특조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였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추진해 오던 행정수도 이전 작업이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인하여 전면적으로 중단되게 되고, 노 정부의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전략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요지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며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에 해당하는 사항이어서 수도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절차를 거쳐 수도를 특정 도시로 한다는 헌법 조항을 신설하여야 하며, 특조법은 헌법개정절차 없이 수도를 충청지역으로 이전하는 내용을 입법한 것으로 헌법개정에 관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그 결정에 이르는 논리 전개에는 중대하고 심각한 법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는 ‘대한민국헌법’이라는 성문헌법 체계를 취하고 있고, 헌법에 일반 법률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개정절차도 일반법률의 그것보다 까다롭게 되어 있다. 이러한 성문헌법 체계 아래에서 불문헌법의 한 종류인 관습헌법을 인정한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법리적으로 불문헌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불분헌법은 일반의 법률개정 절차에 의하여 개정하거나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불문헌법 국가인 영국에서는 주요한 헌법적 사항이 의회의 법률 제정과 개정을 통하여 변경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성문헌법 체계에서 ‘불문적인 관습헌법’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헌법관습법은 성문헌법의 규범적 테두리 안에서 성문헌법의 모호한 점을 보충하고 성문헌법의 실효성을 증대시키는 범위 안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관습헌법의 존재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헌법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헌법제정과 개정의 주체인 주권자, 즉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셋째,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논리를 전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서울이 수도이어야만 한다.”라는 관습법규범이 존재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관습이 관행을 넘어 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다수 국민들에 의한 법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전효숙 재판관의 적절한 지적과 같이 우리 국민들은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이다.’라는 사실적 인식을 하고 있을 뿐이지, ‘서울이 수도이어야 한다.’라는 규범적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헌재가 주장한 관습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특별조치법의 제정 자체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어야 하고 그것은 헌법적 사항이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하고 있다면 특별조치법은 탄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법규범이 없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 다수가 찬성하여 특별조치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야의 사실상 합의로 법률이 제정되었고, 법률이 제정되었을 당시 국민들이 명시적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서울이 수도이어야 한다.’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사실에 눈감은 헌법재판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기구인가.

위와같은 헌법해석의 결정적 오류에 더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오도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인 것은 서울의 지명이 ‘서울’인 것에서 보아도 분명하다며 경국대전까지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신라의 천년고도인 ‘서라벌’에서 유래된 말이며 서라벌이 경주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삼국, 신라, 고려, 조선 모두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선행의 국가이지만, 대한민국이 직접 이들 국가, 즉 왕조국가를 이어받은 것이 아님은 우리 헌법 규정에 비추어 보아서도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뿌리는 상해에 소재하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이지 이성계가 건립한 조선왕조가 아니다. 조선왕조는 신라, 고려 등과 함께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 존재한 하나의 역사적 국가에 불과한 것이다. 또 관습헌법은 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수립된 이후, 즉 대한민국 헌법이 발효된 이후부터 생성될 수 있는 것이지 헌법이 생기기도 전인 조선시대에 관습헌법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에는 관습헌법이 존재할 수 없다. 불문헌법 국가이고 입헌주의 전통이 최소 수백년이 된 영국에는 가능할 수 있지만, 입헌주의 전통이 수십년에 불과하고 입헌주의 정치가 시작되면서 바로 성문헌법이 제정된 대한민국에  관습헌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특조법이 국민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지만, 실제로는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인하여 국가균형발전이 사실상 좌절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비수도권 국민들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와 평등권을 결정적으로 침해하게 된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비수도권 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확대재상산하여 평등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수도권 주민들조차 교통, 환경, 주택 등 제반 삶의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도시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수도권 지역에 인구의 40%, 경제력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예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과연 어느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단 말인가.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상 최종 판단기관의 결정이므로 그 효력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수도이전과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포기되어서는 아니된다.  국민들의 합리적 비판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잘못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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