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자생적 문화운동의 의미

얼마 전 신문에 오래된 문화단체의 해체 소식이 보도됐다, <예술마당 솔>의 해체. 지금이야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훨씬 보편화되었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지역문화에 대한 체계적 계발과 자체 문화판 형성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개척의 시절에 민족문화예술의 계승 이라는 나름대로의 포부로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고자 문을 열었던 공간이 <예술마당 솔>이었다. 한때 회원이 2,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공간이 해체된다는 소식은 개인적인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우리 지역의 자생적 문화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을 하고 바로 강단에서 문화예술관련 강의를 해오던 나는 아카데믹한 곳에서의 강의도 좋지만 사회 일선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소통의 코드를 공유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예술교육의 장이 필요하겠다고 느끼던 차에, <예술마당 솔>을 통해서 학생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회에 걸친 예술론 강의의 기회를 가졌었다. 그때 나는 내가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위로하고,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정돈하던 그 기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한 차원 상승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소박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그 강의에 열심을 다했었다.

항상 학교라는 전문 교육의 장에서만 강의하던 나에게, 사회 속에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망이 어떤 것이며, 이것들의 해소방향이 어떻게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설득시키며 순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체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었다. 아마도 현대식 공동체의 부활을 꿈꾼다면 예술문화의 체험을 공유하는 모종의 공동체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했던 거 같다.

그 후로 한동안 잊고 지냈고, 그 사이 우리 지역사회를 포함한 우리나라 전 사회가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의 프로그램과 마케팅이 활성화되었고, 사회적인 문화 컨텐츠의 개발은 훨씬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중앙정부에서도 지역문화개발을 위한 컨텐츠 개발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지방정부에서도 그것의 시너지 효과를 노려 차별화된 문화정책에 열심이다. 그러던 어느 날에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우리 지역의 문화공간인 <예술마당 솔>이 해체된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니, 느닷없는 마음이 들면서 애석의 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요즈음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적 프로그램의 개발과 상품화는 처음 나의 소박한 열망, 그러니까 이성이 아닌 감성과 감정을 통한 우리 인격의 개발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타인의 이해, 맨투맨 방식의 접촉과 설득의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한 세련된 문화공동체의 실현 등등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하다.

나의 애초의 생각이 무지막지하게도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다는 측면에서는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의 관심은 문화와 예술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자본적 소비와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는 지자체 살림살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자체가 문제 된다 라기보다는, 이런 식의 해결방식은 타인의 이해로, 더 나아가 인간의 이해로, 환경의 이해로 나아갈 수 없으며 자본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욕망만을 소비해버리는 자폐적인 구조로 진행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고도의 자본주의, 즉 무한경쟁을 통한 재화의 축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문화의 소비가 자본과의 밀접한 관련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문화의 소비가 자폐적으로만 진행된다면, 결국 자신(의 욕망)만을 소비해버리는 피상성 속에 타인과의 관계는 복구할 수 없는 자기 기만적 만족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은 달콤한 피상성 속에서 타인을 잊어버린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가 바로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약속, <윤리>가 실종되고 만다는 데에 그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문화와 예술은 기본적으로 물질과 감각을 통해 확인되며, 우리의 감성을 경유하여 체험된다는 특수성 때문에 그 전파력과 중독성이 무엇보다도 확실하고 절대적인 분야이다.

또한 생업과는 별도의 여가 속에 이루어진다는 잉여의 관념 때문에 모든 것이 쉽게 허용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마도 달콤할수록 더욱 빠른 전파력을 발휘하고 쉽게 중독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관념 때문으로 파악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소박하게 구성되는 지역의 자생적 문화운동은 그 건강성의 측면에서 우리 모두가 지원하고 격려하며, 한 마을의 우물처럼 지켜야하는 우리의 윤리적 지표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마당 솔과 같은 자생적 문화의 건전한 생명 유지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갓 문화예술단체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생적 문화운동은 우리 문화의 건강성과 미래를 가늠하는 지역의 윤리적 지표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대자본과 폼 나는 문화행사, 문화컨텐츠는 사실, 맘만 먹으면 이룰 수 있는 행사이기도 하고, 어느 지역이나 실현가능한 형식이기도 하다. 있으면 좋고, 또 그것의 부대효과를 생각하면 꼭 유치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문화단체의 활동은 아무리 거대한 자본이라도 일시에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 지역에서만 가능한, 우리 지역문화의 소중한 인프라이기도 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지역사회의 윤리적 지표 하나쯤은 자랑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감동한 사람은 누구나가 자발적이 되며 이런 자발성은 언제나 너그럽고 포용적이다.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예술활동이 중요한 것은 바로 건강한 지표를 만들고 유지한다는 자부심의 증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타인>임을 잊지 말고, 따라서 이런 건강한 지표는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도 더불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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