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나라 노동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왜곡된 역사 발전 과정을 강조하면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굳이 일제 식민지 시절까지 들추어낼 것은 뭐냐?”고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식민지라는 비틀린 근대화의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과정은 다른 나라들과 매우 달랐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인류의 보편적 상식이 된 것은 수천 년 인류 역사 속에서 단지 2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중세 사회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시민’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출연했다. 장원이 해체되면서 해방된 농노와 몰락한 영주, 숙련 노동자와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모두 시민계급으로 성장했다. 중세 사회가 해체되고 시민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예전과 달리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권리가 존중돼야 하는지를 피눈물 나게 깨닫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그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우리 스스로의 계획과 전혀 무관하게 어느날 갑자기 일제 식민지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됐다.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는 신분제도를 우리가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해방이 된 뒤 ‘친일파’라고 불리는 식민지 협력자들은 사회 상층부에 진입하여 정치·경제·언론·교육·문화·행정을 장악한 반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권력을 갖지 못했다. 식민지 부역자들이 해방된 뒤에도 그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경제 개발을 계속 지배한 뼈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는 별로 없다. 월남과 우리나라 정도가 그 드문 예에 속한다.
역사 전환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각종 제도와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이 국민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도덕 이상의 문제를 갖는다. 도덕적 우월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하면 근대적 합리성이 자리 잡지 못하는 비극 초래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에 접대문화가 비정상적으로 토착화된 이유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기업 경영을 시작한 사람들이 점령 세력에게 아첨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보한 조선 사대부 출신들이었다는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 왜곡되고 비틀린 역사가 어느덧 한 세기를 지났다. 일제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그 와중에 군사독재정권 30년 세월을 겪으며 건설된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한 의미를 강조하며 “과거사 규명이 필요하다”는 글을 썼더니 “노동문제연구소장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킬 생각은 안 하고 한가하게 역사나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반론에 동감하는 것이 슬픈 우리 현실이다.
다른 나라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확립한 노동자 권리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들이 우리 사회에는 수십 년 늦게 실현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교사 노동조합이 생긴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우리나라에 전교조가 설립됐고 다른 나라에 공무원 노동조합이 생긴 지 수십 년 지난 뒤에야 우리나라에 공무원노조가 설립됐다. 다른 나라 의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수십 년 지난 뒤에야 우리나라 의사들도 자신들이 노동자라고 느끼고 얼마 전에 최초로 의사 노조를 설립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오래 전에 하청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회사가 응하도록 제도화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포항의 건설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각오하고 포스코 본사를 ‘불법 점거’하고 나서야 원청회사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경찰, 판사, 변호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역사의 순리는 무섭다. 1천6백여 명의 교사를 해직하고도 전교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4백여 명의 공무원들을 파면, 해임하고도 공무원 노조의 설립을 막지 못한 것도 그것이 역사의 순리였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왜곡된 역사 발전 과정에서 다른 나라보다 수십 년 뒤진 현상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삼권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이번에 노사관계 로드맵에 합의한 사람들은 노동삼권이 점차 축소돼 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복수노조 설립이 유예되면 10퍼센트 남짓에 머물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요원한 꿈이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사업장에 건전한 새 노조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직권중재 제도를 없앤다고 하지만 필수공익사업장 쟁의시 대체근로를 가능하게 하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 보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새로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되는 혈액공급, 항공, 폐ㆍ하수처리, 증기ㆍ온수공급업 사업장은 대부분 민주노총 소속이니 민주노총에게는 회의 시간과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한국노총 위원장이 참여해 합의해 준 안에 대해 민주노총이 ‘야합’이라는 볼 맨 소리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 사회의 노사관계는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어찌 보면, 그것은 ‘노동 해방 세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글.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hacla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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