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탄에 빠진 국민, 헛발질하는 정치권-홍덕률회원

홍덕률회원께서 평화뉴스에 쓰신 칼럼입니다. 옮겨 싣습니다.

‘침체’, ‘끝모를 추락’, ‘대폭락’, ‘위기’, ‘붕괴’, ‘구제금융’, ‘국가부도’, ‘불안’, ‘초비상’, ‘절망’, ‘공포’, ……. 국제금융과 경제 관련 소식들이지만, 요즘은 거의 매일 신문 1면의 머리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낱말들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를 싸맨 증권가 신사의 괴로워하는 얼굴 사진이 등장한다.

한번 들어도 가슴이 섬뜩한 말들인데, 요즘은 하루걸러, 어떤 때는 연일 보고 또 읽어야 하니 보통 힘든게 아니다. 이러다가는 심장병으로, 울화병으로 쓰러지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신문을 받아든 아침부터 우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국가적 위기 상황을 헤쳐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리더십과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당연히 그들은 지금 어떤 대책들을 세우고 있는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정치면으로 눈을 옮긴다.
‘오락가락’, ‘둔감’, ‘불신’, ‘소통 부재’, ‘무너지는 리더십’, ‘전-현 정권 공방’, 그것도 모자라 ‘국정원 정치개입’, ‘쌀 직불금 부당 수령’, ‘… 의혹’, ……. 더 우울해지고 착잡해진다. 숨이 탁 막힐 정도다. 이 국가적 난국을 제대로 헤쳐갈 수 있을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온다. 오늘 어려운 것은 허리띠 졸라매고 참아낸다 하더라도 내일은 낳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책임과 몰염치, 국민은 없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신문을 덮어버릴까 하다가, 꾹 눌러 참고 사회면을 펴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불행하게도 그곳 역시 어두운 세상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 자살’, ‘묻지마 방화, 살인’, ‘생계형 절도범 급증’, ‘세상 비관’, ‘멜라민 파동’, ‘…사장 출근 저지’, ‘언론사 집단해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 촛불’. 그 옆에는 ‘촛불시위에 참여한 유모차 엄마를 불러놓고 아동학대죄 운운하며 야단치는 국회의원’의 모습과 ‘서울로 올라와 분노를 쏟아내는 성난 농민들’, ‘언론 독립을 외치며 눈물 흘리는 여기자’의 사진 컷이 보인다.

또 있다. ‘낙하산 인사’, ‘교과서 개편’ 시도에 대한 ‘역사학자 반대 서명’, 국방부의 ‘금서목록 발표’ 등, 십 수년 전쯤 귀에 따갑도록 들어왔던 말들이 신문 사회면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신문의 칼럼 제목처럼, 경제면을 봐도 정치면을 봐도 그리고 사회면을 봐도, 지금 국민은 내팽겨쳐져 있는 것이다. ‘도탄에 빠진 국민, 헛발질하는 정치권’. 바로 오늘,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명색이 사회학을 연구한다면서 하루하루 신문을 안 볼 수도 없고 들여다보자니 속이 상하다 못해 타들어간다. 온갖 구태와 사회악과 꼴불견들이 완장차고 활개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이제는 역겹기까지 하다. 경제도 경제지만,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저 탐욕과 파렴치, 무책임과 몰염치를 봐 주기가 너무 힘들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이 고통일 정도다.

어느새 절망이 코앞에까지 닥쳐온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 절망감이 나만의 것이 아닌 게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통째로 절망으로 뒤덮여 있다. 개인의 절망을 넘어 사회적 절망인 것이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사회학자로서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절망의 강을 넘어서야 한다. 그 어떤 희망도, 그 어떤 승리의 역사도 절망을 넘어서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어떤 절망이든, 그것은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젖 먹던 힘을 모아,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고야 만 위정자들에게 한마디 하기로 맘을 고쳐먹는다. 우리 사회가 이대로 주저앉고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좌파’가 아니라 ‘역사의 대면’에서 졌다”

첫째, 제발 ‘좌파 척결’에 국력을 소모하지 말라는 얘기다. 지금은 한가로이 좌파와의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좌파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대면하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좌파를 척결한다며 싸움판을 벌여온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혹독하게 겪고 있는 국가적 위기의 진원인 것이다. 10년 전, 한나라당은 좌파에게 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의 대면에서 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좌파든 우파든 역사의 흐름을 놓치는 순간 뒤쳐질 수밖에 없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전환기다. 이 역사적 전환의 본질과 내용과 방향과 과제를 정확하게 통찰해 내는 사람과 세력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되찾아야 할 것은 좌파에게 내준 지난 10년이 아니라, 역사적 통찰력인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는 오늘날 모든 국정운영의 기본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언론을 장악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소통을 막고,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하게 하고, 검찰을 권력도구화하고, 국회와 권력행사의 절차를 무시하는 방식으로는 경제도 살려낼 수 없고 국민적 지지도 받을 수 없으며, 당연히 지금의 위기도 헤쳐갈 수 없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귀를 열고, 국민의 지혜를 모아내며, 국민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주의 정신으로 다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실력있는 인재를 널리 등용해야 한다. 평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 이익만 추구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려온 사람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대통령과 사사로운 관계를 맺어온,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는 소인배를 등용해서는 안된다. 21세기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그러면서도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 실력과 열정을 갖춘 인재라면 좌와 우를 막론하고 널리 구해 써야 한다. 국가경영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망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한마디 해 놓고 보니 모두 원론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 모든 일이 꼬이고 뒤틀리고, 국민이 도탄에 빠지게 된 것들은 모두 이 간단한 원론들이 팽개쳐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 무너진 원론들을 바로 세울 수 있다면, 지금의 국가적 난국을 헤쳐 가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일은 바로 그 잃어버린 원론을 다시 세워내는, 간단한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홍덕률의 시사칼럼79]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drh12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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