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 위협받는 인권 –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정보화시대의 인권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 정보공유연대 IPLeft 회원)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정보화는 급속한 속도로 이루어졌다. 적어도 인터넷 사용률과 초고속통신망 보급률은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이다. 하지만, ‘정보화’란 단지 ‘정보통신기기의 사회적 보급의 확산’ 혹은 ‘전산화의 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정보화는 오히려 ‘사회적 소통과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정보통신기기의 보급이나 전산화의 진전은 그러한 목적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서만 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우리는 ‘정보사회’에 살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적이며, 지속가능성을 가진 사회’에서 살기를 원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부터 지속된,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예를 들어, 환경문제, 성차별, 빈곤, 빈부격차 등-를 안고있을 뿐더러, 또 한편으로는 정보화라는 새로운 사회변화가 이러한 가치에 조응하도록 노력해야할 과제 역시 안고 있다.

정보화의 어두운 그림자
이러한 논의는 정보화가 그 자체로 인권의 신장과 민주주의의 진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며, 정보화로 인한 기회의 확대와 더불어, 정보화가 오히려 인권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많이 회자되다시피, 정보화는 우리에게 많은 긍정적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다. 효율성과 생산력의 증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줄 수 있고, 기존 주류 매체에 소외되어있던 개인과 소규모 단체에게 자기 표현의 기회를 확대시켰으며, 사이버 공간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보다 폭넓은 지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국제적인 차원의 교류와 연대도 보다 쉬어졌다.

역으로, 정보화의 그림자 역시 점차 드러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 CCTV와 같은 전자감시장치의 도입과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의 증가에 따른 프라이버시권의 침해 위협, 정보의 상품화에 따른 정보 격차의 심화 등.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정보화를 추진하되 역기능을 최소화하자고 누구나 쉽게 얘기하지만, 정보화가 추진되는 사회적 맥락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는 오히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기 쉽상이다. 예를 들어, 최근 정보통신부가 정책 추진을 철회한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도, 인터넷을 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하려고 했지만, 모두가 표현의 주체인 인터넷을 섣불리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통제와 감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민주적 과정 없이 추진되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경우도,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정보인권(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할 우려 때문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저작권 침해를 근거로 MP3 음악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소리바다’를 규제하는 것은 인터넷 상의 개인들의 파일 교환을 규제하겠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슈들이 쉽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는 어떠한 명분-예를 들어, 효율성, 범죄 예방, 저작권 보호 등-과 또 다른 권리의 충돌로 비춰지기 때문이며, 또 다른 측면으로는 오프라인과 다른 디지털 네트워크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정보화로 인해 심화된 불평등
더불어, 우리가 이해해야할 중요한 사회적 맥락은 이러한 모든 이슈들이 평면적인 개인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지 않은 사회적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리바다 이슈와 같은 저작권 문제는 단순히 저작자 개인과 이용자 개인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망을 장악함으로써, 음악 창작자 역시 통제해왔던 음반 제작·기획사들이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에 반발하고 있는 현실과 관계되어 있다. 제반 감시 장치를 개발·도입하는 이면에는 자신의 이윤 확대를 위한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려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인 모순의 발생은 기존 체제의 모순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역으로 정보인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추구해왔던 가치를 신장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소리바다 이슈는 이용자들의 문화 향유권과 문화창작자의 권리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생산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정보 감시에 반대하는 투쟁은 민주주의의 신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인권의 중요한 가치
‘정보인권’ 개념이 정보사회를 이해하는 전능의 수단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제시하고, 정보화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매개는 될 수 있다. 특히, 경제개발의 논리, 경쟁력 강화의 논리에 기반해서만 정보화가 추진되어 왔으며, 정보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보사회에 적합한 법·제도 마에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우리 사회에서 정보인권은 편향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인권의 개념과 영역은 역사적·사회적인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정보인권 역시 고정된 개념은 아니다. 다만, 현재 (네트워크에서의)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과 반감시권(혹은 자기정보통제권), 정보공유의 권리, 알권리와 정보접근권 등이 정보인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번 정착된 잘못된 법·제도·사회적 시스템을 이후에 되돌리기는 무척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정보화 과정에서 정보인권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올바른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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