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대 총선의 의의와 대구경북의 과제

17총선결과의 의의와 대구경북의 과제

홍 덕 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학교 사회학. drhong@daegu.ac.kr)

제 17대 총선이 끝났다. 돌아보면 유난히 사건도 많았고 바람(風)도 많았던 선거였다.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 선거 전 부동표가 많았고 표심의 기복도 심해서 예측이 쉽지 않았던 선거였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대부분 당 리더를 교체해야 했을 만큼 요동친 선거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정당들이나 후보들 그리고 관계자들 모두 피말리는 경쟁을 벌여야 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받아 연금 상태에 갇힌 채 치러졌다는 점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 야당들의 진로는 물론이고 대통령의 향후 진퇴와도 무관할 수 없는 선거였기에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임한 선거이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17대 총선이 이제 역사로 남게 된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의 정치와 사회가 안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사회적 혼란과 국가 불안의 원천이었던 16대 국회를 철저하게 심판하였으며, 지역주의와 돈선거와 보스정당체제에 의해 심각하게 굴절되어 있던 기형적 의회 구조를 재편해 준 것이다. 역사가 요구하는 중차대한 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풀지 못하고 늘 싸움만 하던 일들을 국민이 나서서 해결해 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7대 총선은 역사적 의미로 충만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들을 통과한 의미를 갖는 중요한 선거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7대 총선은 새 역사를 연 총선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7대 총선은 또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숙제들도 남겨 주었다. 영남권에 강고하게 남아 있는 지역주의가 그것이며,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고 뿌리내려야 하는 것도 17대 총선이 우리에게 남겨준 중요한 숙제들이다. 먼저 17대 총선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몇 가지로 추려 보는 일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17대 총선의 역사적 의의

첫째는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야당들이 국민의 심판을 받아 참패했거나 크게 위축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당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대통령 탄핵을 앞장서 추진했던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는 총선에 나서지도 못했으며, 한나라당의 홍사덕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조순형대표와 유용태의원 등이 모두 국민의 혹독한 심판을 받아 원내 진입에 좌절했다.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 의석 정당(2004년 4월 현재 271석 가운데 137석 차지) 자리 뿐만 아니라 1당 자리도 내주었다. 개헌 저지선(100석)을 확보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반면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온몸으로 막았던 열린우리당은 16대 때의 49석에서 103석이나 늘어난 152석을 획득하면서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사실상 압승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7대 총선에 담긴 첫째 민의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 따라서 17대 총선의 결과는 대통령이 사실상 국민에 의해 정치적으로 재신임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는 아직 대통령의 언급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해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로 나라가 분열되고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17대 총선을 통해 국민이 정치권에 던진 강력한 명령이기도 한 것이다.  

셋째, 43년만의 의회 권력의 교체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의회를 지배해 온 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권력이 소수정당으로 내려앉고 그들에 맞서 온 개혁-민주 세력이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의회 권력까지 교체된 것이다. 수구 냉전주의-권위주의-성장주의-부패 세력이 의회 내 소수 세력으로 위축된 것이며, 평화통일-민주주의-복지-개혁 세력이 의회 권력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87년의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그로부터 10년만인 1997년에 역사적 첫 정권교체를 실현한 뒤, 지금까지 지체되어 온 의회 권력의 교체까지 완결해 냄으로써 우리 사회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전면적인 사회개혁-패러다임의 전환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은 한국 정치의 질과 의회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 역사적 쾌거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원내에 진보정당이 진출함으로써 17대 총선은 매우 빛나는 역사적 의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책정당, 진성당원의 당비 수입에 의거한 재정 마련, 민주적 당 운영 등에서 기존의 보수 정당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모범을 보여 온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다른 정당들의 의사결정구조, 부패 관행의 청산, 그리고 의회의 운영 방식과 정치 문화 등의 모든 면에서 의미있는 충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것은 한국 정치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들 간에 생산적인 정책 경쟁과 탈지역주의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우리 정치권을 선진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섯째,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선 자민련의 김종필총재까지 의회 진출에 실패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3김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이 참패했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향력을 끌어들여 호남을 공략했던 민주당의 선거전도 실패했으며,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은 중도에 출마를 포기했고 그의 대변인격인 박종웅의원까지 부산에서 패배한 것 등은 사실상 DJ와 YS와 JP 등의 영향력이 자신들의 텃밭에서조차 무너져 내렸음을 의미한다. 제 17대 총선을 계기로 우리 정치는 바야흐로 3김 시대에서는 물론이고 그들의 그늘에서까지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섯째, 그것과 함께 선거 때마다 극성을 부리던 지역주의가 과거 선거 때와 비교해 크게 위축된 것도 17대 총선의 중요한 성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자민련은 충청권에서조차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쳤으며, 민주당도 호남에서조차 혹독하게 심판받았다. 각 당들이 선거 막바지에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부추겼지만 국민은 그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은 것이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명맥을 유지하려 했던 두 당 모두 초라한 몰골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단지 영남권에서만 지역주의가 강고하게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것도 과거와 비교해서는 부분적으로 완화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정책으로 끈질기게 승부해 온 민주노동당이 전국적으로 고른 정당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원내에 진출한 것, 전국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열린우리당이 대구경북만 제외하고 전국정당의 외양을 어느 정도 갖춘 것도 앞으로 지역주의가 빠르게 해체될 것이란 전망을 갖게 해 주었다.

일곱째, 돈선거와 같은 낡은 선거운동 방식이 크게 퇴조한 것과 38명의 여성 의원이 국회에 진출한 것 등도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쾌거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부패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낳았고 그것은 기존 정치권의 노골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치관계법 개정을 피할 수 없게 하였으며, 17대 총선은 돈선거 추방과 정당명부제 투표 제도 등을 담은 새 선거법에 의거해 치러진 첫 선거였던 것이다. 그 결과 17대 총선은 몇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돈선거를 상당 부분 천산하고 여성 정치인을 대거 진입시키는 등의 성과를 가져옴으로써 17대 국회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17대 총선이 남긴 숙제

하지만 17대 총선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들을 남겨 놓기도 했다. 중요한 몇 가지만 추려 보자.

첫째는 상생의 정치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약간 넘는 의석을 차지하긴 했지만 야당도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나눠 갖게 된 것이 갖는 의미인 것이다. 일단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야당의 비생산적인 발목잡기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힘에 의한 밀어붙이기도 사실상 어려운 아슬아슬한 과반의 의석만 국민들로부터 허용받은 것이다. 야당 역시 명분없는 발목잡기와 정쟁 일삼기에 대해 혹독한 심판을 받은 것이며, 상생과 토론의 정치를 펼칠 것을 국민들로부터 요구받은 것이다. 이제 여와 야는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대화와 토론의 정치, 상생의 정치, 민생의 정치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17대 총선이 여야 정치권에 던져준 첫째 과제인 것이다.

둘째는 지금 현재 가장 큰 현안으로 남아 있는 대통령 탄핵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법리적으로 심리중이긴 하지만, 16대 국회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최대한 수용해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것은 17대 총선을 통해 대통령 탄핵 반대 의사를 또 한차례 분명하게 표시한 국민에 대해 16대 국회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16대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해 만들어 놓은 대통령 부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하루속히 해소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노무현대통령이 지난 해 말 국민에게 약속했다가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재신임 문제 역시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존중해 정치적으로 해소해 가는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제는 대통령이 지나치게 흔들려서 일을 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정쟁으로 인해 국정이 중단되는 등의 비극적인 사태가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넷째, 대통령 탄핵의 문제와 대통령 재신임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야 대표회담이 조속히 열려야 할 것이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고 또 불편해 하고 있는 이 문제부터 여와 야의 대표가 대화로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원칙은 17대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최대한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의 박근혜대표와 민주당의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대통령 탄핵 사태와 관련해 사실상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의사표시를 해온 만큼,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적극적인 결단으로 결자해지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분에 넘치는 152석과 121석을 차지해 의회의 두 축으로 서게 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실은 크게 반성할 대목들이 적지 않다. 먼저 열린우리당의 경우는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받아도 좋을 만큼의 실적이 있어서 받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자만해서도 안되며 이겼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오로지 야당들이 추진한 대통령 탄핵이 잘못된 것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열린우리당에게 그만큼의 과분한 의석을 안겨 주었을 뿐이다.

국민은 야당을 심판한 것이지 열린우리당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다음의 심판은 열린우리당에게 가해질 것이다. 또한 국민은 지역주의 극복과 전국정당 건설, 그리고 새 정치 실천을 약속한 것에 대한 기대로 표를 준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국민은 열린우리당의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국가 현안들에 대해 책임있게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실질적인 여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받은 121석도 실은 과분한 의석이라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만큼이라도 안겨준 국민에게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121석이나 되는 적지 않은 의석을 받을 만큼 한나라당이 잘했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차떼기에 방탄국회에 서청원의원 석방에 대통령 탄핵 등 한나라당의 부패와 오만을 지켜보면서 한나라당에 채찍을 들었던 국민의 분노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과거의 잘못들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환골탈태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약속을 믿고 고민하며 표를 준 것이다. 역시 한나라당의 과거가 아닌 아직 확인되지 않은 미래에 표를 던져 준 것이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철저하게 변화해야 한다. 수구냉전에 매몰되어 있어선 안된다. 색깔론이나 지역주의에 기대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해서도 안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발목잡는데서 야당의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 페어플레이,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는 국정의 한 책임자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21석에 담긴 그와 같은 국민의 뜻을 잊는 순간, 한나라당은 지금의 자민련이나 민주당의 뒤를 이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있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여야 정치권의 결단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며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한 구태는 다음 선거 때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17대 국회는 과거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특히 영남을 중심으로 강고하게 남아있는 지역주의를 해소해 가기 위한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해 실천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영남권을 석권하면서 수도권 등에서 크게 패배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과 함께 전국정당화를 놓고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남겨진 대구경북의 과제

우리가 사는 대구경북으로 눈을 돌리면 답답해진다. 박근혜바람이 광풍처럼 몰아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한나라당의 싹쓸이와 지역주의 투표를 우려했는데,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던 그 우려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17대 총선이 대구경북에게 던져준 어려운 숙제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대구경북에서 유독 강력하게 확인된 지역주의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지역주의가 완화 내지는 해체된 것으로 확인된데 반해 대구경북에서는 매우 강고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TK 지역에 유독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낡은 지역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대구경북의 시도민과 언론,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남겨진 매우 심각한 숙제인 것이다.  

둘째, 대구경북을 휩쓴 지역주의의 원천은 역시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나라당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TK 정당으로 몰락하지 않으려면 설령 대구경북에서 일부 의석을 내주더라도 전국민적 보편성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일차적으로는 최소한 대구경북의 지역주의를 자극해 대구경북에서 의석을 석권하겠다거나 당의 위기 때마다 대구경북을 찾아 위기를 극복하려는 근시안적 전략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금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도 실은 보편적 시대정신에서 크게 벗어난 채 한나라당을 이끌어 온 영남 중심의 의원들과 그들의 사고 및 낡은 정치 관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통렬한 반성은 TK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성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역주의의 또다른 강력한 지지 축은 지역의 보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의 지역 언론은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겼으며, 한나라당의 기관지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편파적인 보도와 칼럼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대구경북이 풀어야 할 중대한 숙제로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넷째, 국민이 경악할 정도로 다시금 확인된 대구경북의 지역주의는 한나라당의 지역주의 부추기기 전략과 지역의 보수 언론, 그리고 지역주의 바람에 매몰된 지역 주민들 때문만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겠다고 나선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지적받아 마땅한 적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강고한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 서기에는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앙당은 물론이고 대구시 당, 경북도 당도 마찬가지며 대부분의 후보들도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 탄핵 뒤의 국민적 분노에만 기대려 했을 뿐 별다른 프로그램이나 전략이 사실상 부재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점은 겸허히 반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해 착실하고도 인내심있게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대장정에 다시 나서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도 지역주의 벽과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다섯째,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며, 일상적인 활동이 지역 시민사회와는 너무 동떨어졌거나 지역 시민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만의 자족적인 활동’은 아니었는지, ‘지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활동’으로 그쳤던 것은 아닌지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총선물갈이 시민연대가 선정한 대구경북의 다섯 지지후보들 모두가 낙선한 것,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해 발표한 대구경북의 낙선운동 대상 후보가 모두 당선한 것 등은 이 지역에서의 시민운동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 어쨌든 지역주의는 한나라당의 사실상의 싹쓸이로 나타났고 그것은 대구경북에게 큰 숙제를 안겨 주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우려했듯이 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지경인 대구와 경북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지방분권의 시대고 그만큼 지역사회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이 때에, 모든 정치인과 선출직 공직자들이 한나라당 일색으로 채워진 것은 대구경북의 경쟁력 제고와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째, 한나라당의 석권이 남겨준 문제들 가운데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처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들까지도 한나라당 일색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서 건전한 상호비판과 견제와 경쟁의 공간이 계속해서 확보되지 못하게 되었으며 당연히 지역사회의 다원적 발전과 역동적 전진이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다원주의 시대, 지역혁신의 시대, 시민의 시대에 대구경북의 발전에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여덟째, 실은 그보다도 더 심각한 걱정이 있다. 대구와 경북이 우리 시대의 보편적 정신이자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이기도 한 민주주의 수호와 탄핵심판의 정신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개방의 시대-소통의 시대-세계시민의 시대에 대구경북이 편협한 도시로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는 대구경북이 경쟁력을 지키고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할 수 없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칫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편안하다고 느끼지 못해 외지로 나가려 하고, 외지의 기업이나 인재가 대구경북을 갑갑하다고 느껴 들어오려 하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 새 시대에 대한 전망 등에 있어서 대구경북민의 의식과 가치관이 보편적 시대정신과 너무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나, 우리 지역과 우리 지역민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자칫 바깥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왕따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17대 총선 특히 대구경북의 한나라당 싹쓸이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갖게 된 가장 큰 걱정인 것이다.

※ 이글은 4월 16일 평화뉴스(www.pn.or.kr)에 기고된 글입니다.

2004-04-16 11: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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