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홍덕률회원

(이 글은 2008년 5월 2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홍덕률의 시사칼럼] “지켜야 할 가치와 절차..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혁신하라”

이명박대통령과 이명박정부가 벌써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숱한 정책들을 내 놨지만, 뭐 하나 국민을 감동시킨 것도, 국민의 동의를 얻어 착수된 것도 없다.

인사는 아파트 값 폭등으로 주름만 늘어가는 서민들 가심에 불을 짚어 놓았으며, 영어 몰입교육과 학교 자율화 조치는 학생과 학부형의 불안만 가중시켜 놓았다. 한반도 대운하는 온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해 놓고는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에는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실내 적정온도를 26°C로 제한하고 그를 넘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책이 발표됐다가 반발이 일자 없던 일로 덮어졌다.

건설기술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해 꼼수를 두고 있다며 양심고백을 하고 나섰다.

지켜보는 국민은 지금 혀를 차고 있다.
어떻게 한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며, 걱정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을 어떻게 살아갈지 한숨을 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명박정부는 국민들에게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을 넘어, 무책임한 정부, 준비안된 정부, 말바꾸는 정부, 거짓말하는 정부, 무능한 정부, 아마추어 정부로 읽혀지고 있다.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엉뚱한 해법으로 변죽만 올린다면 문제는 더 꼬인다”

그런 국민의 불만과 우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새벽 시간까지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부딪쳐 연행자가 속출했다고도 한다. 시위대의 구호 중에는 ‘대통령 탄핵’ 소리도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세간에는 쇠고기 괴담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명박괴담이 돌고 있다. 정말로 불행하고 걱정스런 위기 징후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이 혼돈과 위기와 괴담들은 수습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정작 더 걱정인 것은 수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비서관과 장관 한둘을 교체하면 좋아질까? 청와대의 정무기능을 보강하면 달라질까?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와 화해하고 한나라당이 친박 의원들을 복당시키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당ㆍ정ㆍ청의 정책 조정을 강화하면 낳아질까? 요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있는데, 예컨대 KBS 사장을 퇴진시키고 비판적인 언론들에 재갈을 물리게 되면 이명박대통령의 지지도는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지금 겪고 있는 온갖 혼돈과 위기를 낳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본에 접근하지 못한 채 엉뚱한 해법만 갖고 변죽만 올린다면 문제는 더욱 꼬여만 갈 것이고 위기 또한 더 깊어만 갈 것이다.

그럼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참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명박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명박대통령의 철학과 국가관, 대통령의 역할과 덕목에 대한 인식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며,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지금의 혼돈과 위기도 수습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대하거나 낙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희망을 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두 가지만 짚어 간절히 당부하고 싶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 자신부터 국가 경영의 철학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체 국가 경영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국가 주권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국민들은 지금 그 모든 소중한 가치들이 이명박정부에 의해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보면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얼마나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지 국민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촛불 집회를 신고한 전주 덕진고등학교 학생을 수업 중에 불러 수사하고, 촛불시위를 불법집회로 규정해 처벌하겠다고 하는 기상천외한 대응을 보면서, 국민은 그동안 숱한 희생을 치르고 눈물겹게 쟁취한 개인의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정부가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절감하고 또 경악했다. 나아가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국민은 이 정부가 국가 주권마저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명박정부가 남북문제와 북한 핵 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북-미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을 들러리로 내밀고 만 정부의 어설픈 접근에 국민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국민의 건강과 생명,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국가 주권을 지키는 것은 전통적으로 우파의 강점이 아니었는가? 우파 정부를 강조하면서도 이명박정부는 우파의 근거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오직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경제살리기 밖에 없다. 국민이 비록 경제를 살려내겠노라고 약속한 CEO 출신의 이명박대통령을 선택했지만, 그것을 다른 모든 가치들을 훼손해도 좋다고 양해한 것으로 오독해서는 안된다.

둘째, 이명박정부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절차를 너무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희생해도 좋다는 것이 결코 아닌데, 이명박정부에게 민주주의는 별로 소중하지 않은, 때때로 거추장스럽기만 한, 악세사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의 뜻은, 지난 정부들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경제를 살려 내라는 주문이었지, 민주주의를 희생시켜서라도 경제를 살려내라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명박정부는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명박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매우 취약한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학생의 인권, 노동자의 인권, 심지어 민주시민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 등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해법은 따라서 대통령 자신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내는데 있다.
국가가 지켜 내야 할 가치, 국가 경영자가 따라야 할 민주적 절차와 과정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경제살리기 이상의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그와 같은 인식 전환에 도움되거나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참모들을 주위에 배치해야 한다. 자칫 기능적으로 보완하거나, 땜질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전혀 도움되지 않을 것이다. 말로만 하는 반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혁신해 내는 일만이 해법에 제대로 접근하는 길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예 기대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안정을 위하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홍덕률의 시사칼럼77]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drh12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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