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불평등의 권력의 문제다.

올해 12월 제네바에서는 UN 주최로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가 열린다. 정보화에 초점을 맞춘 첫번째 국제회의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 회의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는 ‘정보 불평등’의 해소이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성별, 계층별, 지역별 정보불평등, 국제적 차원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정보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이용률 및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등이 세계적으로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정보불평등의 문제가 별로 사회적인 쟁점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정보화 역시 경쟁력과 효율성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공공성’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해결해야할 정보불평등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통신의 활용도가 높아진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자가용이 보급되는 초창기에는 소수 부유한 사람들만이 자가용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 당시에는 자가용 소유 여부가 문제가 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자가용 보급 비율이 높아지면 자가용의 등급과 같은 다른 요소가 계층간의 격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평등한 접근’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정보의 불평등은 다양한 차원에서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보 불평등’의 해소가 단지 ‘네트워크에 대한 평등한 접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보에 대한 실질적인 평등한 접근으로서, 인프라에 대한 접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지적 능력의 함양, 기반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 컨텐츠에 대한 접근 및 공동체가 원하는 컨텐츠의 생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프라의 부재나 높은 가격, 교육 여건의 부족, 공공정보 공개 제도의 부재, 저작권 등에 의한 기반 소프트웨어 및 컨텐츠에 대한 접근 제한, 모든 형태의 사회적 차별, 경제적 조건을 악화시키는 경제 구조, 미디어의 소유권 및 통제 등이 모두 정보 격차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평등한 정보접근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장애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권’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져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비용의 문제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학교, 동사무소, 도서관, 우체국 등 공공 시설을 통해 무료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 등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장비를 개발하고, 저렴하게 공급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컨텐츠의 생산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개발·보급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상용 소프트웨어로 이는 매우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이용을 포기하거나 불법복제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누/리눅스(GNU/Linux)와 같은 자유 소프트웨어의 활성화를 지원함으로써 굳이 상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정보의 생산을 활성화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매킨토시 이용자나 리눅스 이용자들은 심지어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조차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온라인 뱅킹 역시 이용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두 MS의 익스플로러만을 지원하거나, 이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공공 정보는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 표준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공공기관이나 공적 자금을 투자하여 생산한 정보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다섯째, 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은 ‘공교육’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더불어 기술 교육만이 아니라, 정보사회와 정보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섯째, 저작권 내의 ‘공정이용’이 확대되어야 한다. 점점 저작권은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정보에 접근하고, 복제하고, 이용할 수 있으나, 저작권은 법적으로 이를 금지하며 오직 ‘돈을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작권이 강화될 수록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내의 공정이용, 즉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확대해야할 것이다. 특히,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이용의 경우 공정이용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정보 불평등’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권력의 문제이다. 현재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욱 양질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이것이 더욱 많은 돈과 권력을 가져다 준다면, 한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계속 재생산될 것이다. 정보 불평등의 해소는 ‘평등한 정보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 정보공유연대 IPLeft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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