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공동성명 32돌을 맞으며

한 여름의 열기로 청포도와 함께 국토가 익어가는 7월.
32년전 1972년 7월 4일은 꿈속에서 기적을 만난 듯 했다. 남북분단 27년만 최초로  「통일의 열기 」를 느꼈다. 「7.4남북공동성명 」이 있었던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남북지도자의 뜻을 담은 「조국통일 3대원칙인 自主, 平和, 民族大團結」이 공표되어 경악과 충격과 희망을 던졌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독재정권의 합리화에 악용되었고, 공약(空約)과 사문화(死文化)로 비명해 갔으나,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공동선언」으로 부활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6.15선언 4돌맞이 잔치」를 위해 인천에 북녘대표동포들 150여명이 직항로로 와서 남북공동행사를 치루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변화인가!
7.4 공동성명의  기본정신과 3대원칙은 28년 동안 사막의 밑으로 흐르다가 6.15에 민족의 오아시스로 분출 된 것이다.
지금, 주변정세는 우리 편만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이후, 한국전투병력투입을 종용하다 실기하자, 주한미군을 빼내 이라크로 간단다. 여기에 속없는 「모지리」 들은 안보구멍 걱정이 태산이다. 영원한, 선량한 대한민국 보디가드가 미국인줄 착각하고 있는 사대(事大)환자가 즐비한다.
미국과 조선관계도 “핵문제로”로 `핵핵`거리며 씨름판을 벌리고 있다.
우리는 때로는 미국응원단 같가도 하고, 때로는 `연합예비선수단`같기도 하다.

`룡천역 폭발사고`가 나자, 중국이 제일 먼저 잽싸게 구호지원품을 보냈다. 우리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까지 도움 길에 나섰다.
이 난리통에도 일본총리 `고이즈미`는 방북하여 `남북`되었다는 일본인 수명을 데리고 귀국 하였다. 일제 만행에 희생된 선열은 외면하고, `단군민족`의 미래는 `반전평화운동`과 반통일보수 기득권층 세력`을 더욱 퇴출 시켜, `평화통일`의 탄탄대로로 건설해 가야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남북.해외동포 8천만이 하나로 되어, 민족공조의 깃발 아래, 자주와 평화를 발전 시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

6.15선언 `4돌`동안 30여차의 `장관급회담`과 `경제협력회담`이 열렸고, `군장성급회담`까지 열려, 휴전선상의 상호비방금지는 물론, 서해5도 `꽃게잡이전쟁`도 `군사 핫.리인`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내금강 까지 연장될 날이 머지 않았다.  개성공단에서 `함께 잘 사는 민족`시험도 보나마나 합격이다.  각 부문, 각계각층의 다양하고 빈번한 접촉과 교류협력의 발전상은 놀라울 정도이다.

필자가 관여 하고 있고, 일부 사찰의 개금 지원도 하였다.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읽게하는 고려조 최대사찰 `령통사`복원과 외금강산 신계사의 복원에도 적극 관여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  우리는 꼭 해야할 화급한 일이 있다. `룡천역 폭발사고`피해동포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다.  필자는 항상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 주는 사람이 `부처`이며 `하느님`이다라고 강변 해 왔다. 필자는 지난 5월 중순 평양방문 하여 현지의 참상을 생생하게 알았다. 이제 `립.서비스`만으로 `동포`니 `민족단결`이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느니 넑두리는 필요 없다. `아픔을 같이하고, 실제를 숭상하며 행동하는 `통일보살, 통일꾼` 이 되어야 한다.

지난 해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입은 은혜를 `룡천피해동포` 들에게 희향할 때이다. 우리 모두 선두에 서서 “사람구실”하여보자.  팔공산의 자비원력이 이들에게 재기의 용기와 희망을 주고, 뜨거운 동포애와 보람을 함께토록 하자.

4.15에서도 보여 준 `고질병 싹쓸이` 지방색에 탐닉하지 말고 `접시`를 꺠자. 우물 안의 하늘을 우주로 착각 미화 하지 말고, 탕탕대도를 달리자. 일체에 걸림 없이 생사 넘어 우뚝한 큰물건[?]을 생산하는 비옥한 우리동네로 가꾸자. 7월 태양열을 `민족.동포`사랑으로 만세하자

       법타[공동대표, 은혜사주지, 평불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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