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선정국, 길을묻다(2)

2007년 대통령선거에 대한 고민

1. 반쪽짜리 기형적인 대선구도

대통령선거가 7개월 남짓한 일정을 남겨두었으니 얼추 대선 중반에 접어든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쪽 선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자칫 절럼발이 선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절럼발이 선거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우리가 안게 될 선거결과일 것이다.
올해 들어 언론에 보도되는 선거내용을 보면 정확하게 두 가지 주제로 한정되어 있다. 하나의 주제는 대선국면에서 월등하게 앞서가는 한나라당 이명박과 박근혜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시소게임에 관한 것이다. 또 하나의 주제는 정신 못 차리고 헤매고 있는 열린 우리당을 비롯한 구여권의 지리멸렬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정운찬과 문국현 등 외부 인사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며칠 전 정운찬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구여권은 거의 심리적 공화상태에 빠져들었다. 고건에 이은 두 번째 낙마인 셈이다.

2. 대선전략의 수립이 불가능한 안개국면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대통령직선제를 회복한 후 다섯 번째 선거를 치르게 되었는데 올해 선거는 예년과 여러 측면에서 구별된다.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다른 점은 개혁적인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87년의 김영삼과 김대중, 92년과 97년의 김대중, 2002년의 노무현은 당선 가능한 개혁후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후보들은 모두 당선 가능성을 가진 후보였고 상당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적인 후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개혁적인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는 탄탄한 개혁정당도 없는 국면이다.
개혁진영과는 달리 진보진영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대선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권영길을 비롯해서 세 명의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상태이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폭넓게 바라보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선전이 대선승리로 나타날지는 미지수이다. 적어도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대선국면의 핵심변수가 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공언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 후보와 별도로 독자후보전략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전체 시민사회운동의 움직임은 더욱 느리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대선기획단을 가동하고 있고 지역의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고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사회운동이 대선국면의 주요 변수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대선국면을 반전시킬 새로운 조짐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이런 상황에서 미래구상과 같은 새로운 정치운동이 등장했다. 미래구상은 지난 2-3년 동안 지역순회토론을 거쳐 공유했던 고민들을 정리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올해 대선을 진보개혁진영의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정치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출범했다. 이를 위하여 진보개혁진영의 단일 국민후보를 선출한다는 구상을 표방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진보개혁진영의 선거연합을 통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다.
미래구상과는 별도로, 그러나 미래구상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들도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70년대 긴급조치세대가 중심이 되어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이 발족했으며,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원탁회의를 제안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지역에서도 대구의 영남개혁21, 대전의 소통과 대안, 광주전남의 광주전남원탁회의 등 다양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시민사회운동과 각 부문운동 등 넓은 의미에서의 시민사회가 대선국면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과거와 다른 모색들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들이 한나라당 중심의 불균등한 대선국면을 반전시킬 변수로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4. 대통령선거의 의미

이 시점에서 대통령선거를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올해 대통령선거를 하나의 선거절차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선거는 나름대로의 중요성과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특히 6월 민주항쟁 20주년의 시점에서 치러지는 올해 대선은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을 가름할 중대선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대선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를 넘어서는 선거이며, 단순히 자유로운 정권교체의 차원에서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선거와는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어려운 조건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민주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올해 대선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민주사회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역사적 퇴행을 감수해야 하느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선거이다. 더욱 중요한 대목은 우리 사회가 70년대의 난폭한 개발주의를 수용하느냐, 지역주의를 온존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선거이다.
선거에 대한 시각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87년 체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IMF가 시작된 97년 체제에 초점을 맞추면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 사회는 최근 민주화라는 하나의 흐름과 사회적 양극화라는 또 하나의 흐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화와 개혁이 주춤한 사이에 사회적 양극화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재벌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서울과 지역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등 다차원적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양극화가 주택, 의료, 교육, 환경, 실업 등 우리들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상황에서 대선결과는 우리가 양극화 사회로 나아가느냐 균형사회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5.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올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이 실패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면 옳은 것일까? 시민사회운동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혹은 선거개입이 시민사회운동에 미칠 부작용 때문에 대선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하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여러 가지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대선은 단순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문제이자 사회의 발전방향의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구체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문제라는 점이다.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운동이 사회발전의 방향을 결정지을 대선에 무관심하고 국민들의 미래의 삶의 문제를 등한시한다면 운동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질문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관점은 대선에 참여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참여하느냐 문제일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대선은 다양한 참여양상을 보여주었다. 87년과 92년에는 재야세력이 적극 참여했다. 97년에는 재야세력에 더해 노동운동이 참여했다. 2002년에는 노동운동 외에 노사모라는 정치적 팬클럽이 적극 참여했으며 시민사회운동 역시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재야세력도 없고 노사모도 불가능한 2007년 대선에서는 어떤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견인하게 될까? 6월 민주항쟁 이후 등장한 시민사회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확장된 시민사회의 다양한 전문영역이 답해야 할 것이다.

글. 정대화(상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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