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심이 불타는데 기왓장에 물만…김영철회원

“적심이 불타는데 기왓장에 물만 뿌릴텐가”

[김영철의 경제읽기]…”롱테일(long tail)의 반란과 시대착오적 이명박 정부”

몸의 기억은 정확하다. 요즘 나는 술을 마시는 횟수와 양이 늘고 있다. 1980년에 5월에도 그랬다. 그 때 괴담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당시 군부 세력이 배후 세력에 대한 희한한 정보를 당시 군부 세력이 퍼뜨렸다. 온 몸을 엄습하는 불안감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우리들은 대낮부터 술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요즘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괴담이 시중에 흘러 다니고 있다. 배후 세력에 대한 온갖 추측이 권력 핵심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거의 30년이 다되었지만 놀랍게도 몸은 이전의 행동을 기억해내고 동일한 반응을 한다.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자꾸 술집을 향하게 된다.

“기왓장은 뜯어내지도 못하고…적심은 불타고 숭례문은 소실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외치지만 한국 사회를 10년 뒤로 거꾸로 돌리는 것을 선진화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만큼 시대착오라는 말이 난무한 적은 없다.

지난 번 숭례문 화재 사건 당시, 천장 기왓장에 무작정 물을 쏟아 올리는 소방수 옆에서 “아! 적심에 불이 붙었는데…”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외치던 대목장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적심은 천정 내부의 기둥이다. 적심에 불이 나면 천정에 기왓장을 뜯어내고 불을 꺼야 한다. 그러나 동원된 소방수들은 차마 숭례문의 기왓장을 뜯어내지 못하고 그저 천정에 하염없이 물만 뿌리고 있었다. 그 새 적심은 타고 숭례문은 소실되었다.

“롱테일(long tail), 사소한 다수(trivial many)의 반란”

지금 사람들의 가슴 속의 적심에 불이 번지고 있다. 가슴 속 ‘적심에 불이 붙었는데’, 물대포로 사람들의 손에 받쳐 든 촛불을 끄고 있는 모습 역시 시대착오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가슴 에이며 속으로 타고 있는 불은 물대포로 꺼버리는 촛불과 다르다.

디지털 시대에 롱테일(long tail) 법칙이라는 것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롱테일 법칙은 온라인 상점의 등장과 함께 변화된 소비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이전에 시장에서 무시되었던 사소한 다수(trivial many)가 반란을 일으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전의 오프라인 매점에서는 80%의 매상이 20%의 고객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경우 20%의 고객은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자 몸통이었다. 시장은 이러한 권력과 몸통만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히 이윤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 매점의 등장과 함께 이전에 꼬리에 불과하였던 80%의 사소한 다수가 시장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는 시장 트렌드에 까막눈 정부”

예컨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은 전체 수익 중 절반 이상이 베스트셀러가 아닌 소수의 사람이 한 권씩 구입한 책들에서 나오고 있다. 이베이는 그 동안 무시당해왔던 영세 중소 사업자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해 주며 온라인 상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 세계 1위인 구글의 수익의 대부분은 대형 광고주가 아닌 꽃배달업체, 빵집 같은 자잘한 광고주들에서 발생하고 있다.

롱테일의 법칙은 사소한 다수가 가늘고 긴 꼬리를 만들어 몸통을 해체시키는 과정으로 디지털 사회에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든 이들이 바로 롱테일 법칙에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사소한 다수이다. 인터넷을 소통의 매개로 삼고 있는 사소한 다수가 전체 구성원의 20%도 채 되지 못하는 몸통이 만들어 놓은 온갖 형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롱테일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의 흐름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실제로는 시장의 트렌드에 까막눈이었던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진용은 냉전 시대의 개발년대의 사고방식을 움직일 수 없는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로 짜여 있다.

“촛불에 담긴 사소한 다수의 마음을 읽어야”

개발년대에 한국사회의 몸통으로 진입한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변화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질시하는 좌파의 음모쯤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롱테일 법칙은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우리사회에 일어난 나쁜 사회적 변화의 일단에 불과하다.

몸통을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꼬리는 그들이 원하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부랭이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꼬리가 움직이는 있는 것은 자신을 배신한 배후 세력이 존재하여 꼬리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 이명박 정부가 두려워하는 요주의 인물은 촛불을 두 손에 받쳐 든 시민이 아니라 이들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존재하지 않는 배후 세력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과 싸우는 일과 그 유령이 만들어낸 괴담의 근원을 밝히는 일을 중요한 정치적 아젠다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현대판 돈키호테다. 이명박 정부가 사로잡힌 이 어처구니없는 환시와 막무가내형 시대착오를 벗어나는 길은 촛불에 담긴 사소한 다수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야 말로 적심에 불이 붙었는데 기왓장에 물만 뿌리는 우를 다시 범하지 않는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영철의 경제 읽기17]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철 교수님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계명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과 [대구라운드]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과 내발적 지역경제론](2005), [지역은행의 역할과 발전방안](공저, 2004)과 [자본,제국,이데올로기](공저, 2005)를 비롯한 많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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