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구, 거부 할 수 없는 변화 속으로

* 이 글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발행하는 ‘복지동향’ 11월호에 실린 글이며, 지난 11월12일 무렵 쓴 글입니다.

11월도 절반을 넘겨가는 즈음.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큰 산이 이 계절풍을 막아서고 있지만, 세월과 바람은 어떻게든 그 산을 넘어올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습니다. 천심을 거스르고 가까스로 이 산을 넘어오는 바람은, 비록 넘어는 왔으되 아마 멀리 나가지 못하고 곧 사그라지게 될 것입니다.
‘고담대구’라는 우스갯소리로 불리는 곳, 이 곳 대구에도 그 바람은 불어 올 것입니다.
비록 사그라지는 바람의 마지막 종착지가 될지언정 이 곳 대구도 멀리 불어갈 바람이 반드시 스쳐가게 마련입니다.

요즘, 대구의 시민사회는 그 변화의 앞바람을 맞이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의무(무상)급식 조례제정 시민발의 서명운동이 그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으며, 수십 년간 오직 한 가지 색깔의 옷만 입고 있던 지역정치에 색동저고리를 입히기 위해 지역의 토종 시민정치운동이 그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대구의 이런 소식들을 전해드립니다.

무상급식, 이젠 둘러댈 변명거리도 없는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애들 밥을 가지고 몽니를 부리며 ‘보수의 전사’를 자처하고 있던 지난 8월.
대구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친환경 의무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의 제정을 주민발의로 청구하기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서명운동이 시작될 무렵의 이 곳 대구의 급식현황은 역시나 고담의 명성에 걸맞는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2011년 9월1일을 기준으로 대구지역의 8개구군(7개 구, 1개 군)중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부분적인 무상급식이라도 실시하고 있는 지역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다만 군지역인 달성군 지역에서는 농어촌 지역학교 지원의 일환으로 군내 절반정도의 초등학교가 올해 하반기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실시하는 무상급식이 아닌 특수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대구시나 대구시 교육청의 무상급식 정책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이들 농촌지역 초등학교 10여개를 제외하고 나면 대구는 무상급식 실시학교가 전무한 지역이 됩니다.

다른 지역들은 뒤로하고, 언제나 숙제인 영남지역을 살펴봅니다.
부산에서는 그나마 전 지역 초등학교1학년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고, 경북 지역의 경우는 7개 지방자치단체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답니다. 노동자의 도시 울산도 1개 구에서 초등 6학년의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해서 작지만 일단 무상급식의 시동은 걸고 있답니다.

그런데, 대구는 역시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그냥 깔끔하게 ‘없음’으로 정리됩니다.
대구에서 정치 좀 한다는 분들과 정치에 꽤나 관심을 가진다는 분들 중 많은 분들에게 아이들 밥먹는 문제는 여전히 밥을 넘어서서 이념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이들 밥 가지고 정치하려다 물러간 지금도, 대구 시장님께서는 복지포퓸리즘은 안된다며 무상급식을 강력히 반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시장님은 복지포퓰리즘 보다는 아직 이념포퓰리즘이 대구에서는 더 장사가 잘되는 상품이라고 여기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도 변화가 보입니다.
10.26 재보선 선거전에 거리서명을 할 때면, 서명에 머뭇머뭇 거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아이들 밥을 공짜로 먹이면 대구시 재정은 어떻게 되느냐고 하시는 애향심이 충만한 분도 많고, 또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밥까지 먹여서야 쓰겠냐는 참 설명하기 어려운 신념을 가지신 부가가 아닌 분들도 많고, 내가 낸 세금가지고 아이들 밥을 왜 주느냐는 알뜰한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소신을 가지고 계시겠지만요.

눈에 띠는 것은 서울시장이 바뀌고, 무상급식 논쟁이 일단락 되면서, 이제는 서명을 할까말까 머뭇거리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미세한 이념의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할까요. 머뭇거리다가도 서명대로는 잘 향하지 않던 대구시민들도 이제는 대구도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된다면서 선뜻 서명에 참여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더 눈에 띠는 것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손자볼때가 되신 듯한 나이드신 어른들도 서명에 참여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선거 전후가 확연히 다릅니다.
작년 지방선거부터 이번 서울시장 선거까지 아이들 밥과 관련한 거대한 논쟁은 이제 이념의 산을 넘어 정책 선택의 문제로 연착륙되면서 마무리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념의 도시 대구에서도 그 균열이 확연히 보이니까 말입니다.

이제 11월 중순이면 시민서명이 2만명을 넘어섭니다. 2만2천명의 서명을 받으면 주민발의에 의한 조례제정 청구가 가능합니다. 조금 여유있게 3만명 정도의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구 무상급식조례 제정운동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시의회와 대구시, 대구시 교육청, 각 구군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이 조례는 살아서 아이들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어왔습니다.
이 곳 대구는 사람 사는 도시입니다.

대구! 고인물은 썩는다, 바꿔야 산다.

대구에서 벌이는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릴까 합니다.
여당부터 야당까지 요즘 온통 신당이야기에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기 전에 뭔가 그림이 나올 모양입니다.
요즘 대구에서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지역의 정치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구지역의 토종 시민정치운동을 준비 하고 있답니다.
이름하여 ‘체인지 대구’라고 부릅니다. 물론 대구지역에도 ‘혁신과 통합’을 비롯한 시민정치운동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지역의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은 일찍부터 열악한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 곳으로 집중하여 시민정치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였고 그 결과로 ‘체인지 대구’라는 이름의 시민정치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체인지 대구’는 수십 년간 단일한 정치세력만이 지역정치를 독점하는 것이 오히려 대구를 병들게 한다는 인식아래 지역 정치구도의 다변화를 주창하는 시민 개개인들의 네트워크입니다. 11월 하순경 창립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민참여운동을 벌일 계획이랍니다.
그 첫 단추로 11월말 ‘나는 꼼수다’ 대구공연을 유치해서 홍보활동을 진행할 예정에 있고,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와 기획을 통해 대구에서도 재미있고 유쾌한 시민정치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뭔가를 꾸며 볼 예정이랍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담보로 지역의 야권 정치세력들 사이의 연대를 강제하는 힘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대구지역의 오랜 정치독점 구조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도 돌파구를 열기가 만만치 않을 만큼 단단합니다. 그 독점적 구조가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에는 보수와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만큼 심각한 상황이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무상급식을 비롯한 의미있는 사회적 담론들이 대구에서는 정치의 문제로 과잉 포장되거나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논의와 유통 자체가 힘들어지기가 일쑤입니다. 오랜 권력습성은 행정체계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중앙정부 줄대기, 출향인사 찾기 등과 같은 연줄정치를 당연시 하도록 만들고, 때로는 지역의 언론들까지 그런 습성들을 능력이라며 거들고 미화하기도 합니다.
정치의 다양화는 이런 문제들을 많이 해소해주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체인지 대구’가 대구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해 주십시오.

마치며

최근의 무상급식을 비롯한 사회적 논쟁과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던 단선적 사고 방식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균열은 우리 사회에 입체적인 관점들을 많이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대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더디지만 대구에도 그 균열이 눈에 띱니다.
그 속으로 기분좋은 바람이 솔솔 잘 통하기를 바래봅니다.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은 불어옵니다.

@ 글 : 박인규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