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의 성격과 헌법수호운동

탄핵정국의 성격과 헌법수호운동

1.들어가는 말

사상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검찰총장이나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야당에 의하여 발의된 적은 있으나 한번도 의결이 된 경우는 없었다.

이번 탄핵소추는 역사상 처음으로 소추안이 의결되었다는 점과 그 대상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이며, 탄핵소추로 인하여 헌법기관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비상한 상황이 도래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특히 탄핵의 사유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불명확하며 법률전문가들 다수로부터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나아가 국민들의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탄핵의결이 무리하게 강행되었다는 점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자마자 국민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다. 3월 12일부터 시작하여 3월 27일까지 진행된 탄핵반대 촛불집회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19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범국민적인 광장의 정치가 부활하여 직접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빚어진 현 시국을 ‘탄핵정국’이 부르기로 하고 탄핵정국이 왜 오게 되었는지, 탄핵반대운동의 의미와 향후 방향, 탄핵반대운동이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에 가지는 의미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2.탄핵정국의 원인과 성격

탄핵정국이 오게 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배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권력과 사회 각 부분의 중심을 이룬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무너뜨린 4.19혁명이 5.16 군사쿠데타로 좌절된 것이 한국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후퇴하게 하고 오랜 세월 한국사회의 흐름을 기형적으로 만든 출발이라 볼 수 있다.

국민들은 이른바 ‘반공’을 국시로 하여 독재체제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동, 말, 생각이 허용되지 않는 기형적 질서를 1987년까지 강요받아 왔다. 1972년 이후 대한민국은 국민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뽑지 못하는 비정상적 사회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국민의 참여로 국민에 의한 대통령의 직접 선거라는 가장 초보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획득한 사건이다. 6월 항쟁 이후 비로소 정권교체가 가능해졌고 유신체제 이후 최초의 민간정부인 김영삼 정부에 이어 김대중 정부에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고 대통령에까지 당선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여 온 기득권세력에게는 큰 재앙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 느낌은 느낌이었을 뿐 현실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대기업과 미국 등 국제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하였고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그 성격이 김대중 정부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대중 정부에는 없었던 탄핵소추라는 극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한국사회 보수진영의 주도권이 수구적 기득권 세력에서 합리적 보수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의회의 다수파를 이루고 있으며 사회 주요 부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기득권 세력은 보수라기보다는 수구라는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진보가 미래에 희망을 찾는 것이라면 보수는 현재를 지키자는 태도이고 수구는 흘러간 옛 것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직후부터 선거에 패배한 거대야당은 당내 상당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선 재검표를 강행하였고,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수구적 기조를 가진 논객들의 말과 글에서는 이미 대통령 탄핵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는 그들이 노무현을 출발부터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은 이념과 정책에서 보수의 선을 전혀 넘지 않았음에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탄핵사태를 가져온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민주당의 분당사태이다. 온건한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이념이나 정책을 기조로 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의 친소관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의 태도, 정치적 성향 등을 자료로 하여 무리를 지어 탈당을 하는 방법으로 민주당을 분당시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이것은 민주당에 남은 인물들 중 지역주의에 편승한 수구적 인물들이 많았다고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편 탄핵안 의결이라는 극단적 사태까지 가게 된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당내 투쟁의 영향이 크다. 두 정당의 객관적 이익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치행동이 이루어졌고, 당내 입지가 크게 약화된 양당 내 당권파들이 정치생명 유지를 위하여 노대통령과 극단적 대립국면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두 정당의 지도부는 결과적으로 해당행위를 한 것이다.

다음으로 현 정국의 성격을 본다. 현 정국은 국회 다수 세력이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을 헌법상 탄핵사유가 명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장악한 의회권력을 이용하여 축출하려는 것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힘에 의하여 전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헌정질서 파괴행위이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으므로 총칼을 든 쿠데타와는 성격을 달리하지만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상황을 인식하고도 국회의장이 가지는 합법적 물리력까지 동원하여 강행되었다는 점에서 헌법파괴행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탄핵을 주도하였던 정당의 주요 인사가 대통령에게 탄핵소추 의결로 인하여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되었으므로 헌재 결정 이전에 대통령 직을 물러나라고 촉구한 것은 이번 탄핵소추안의 헌법파괴행위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출발은 여야의 정쟁, 특히 노대통령과 거대 야당의 정치적 대립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진행과정과 결과는 국민들이 1987년 이후 지켜온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서 헌법파괴행위에까지 이르게 되어 대립의 선이 여야 정치세력간이 아니라 수구정치세력과 민주주의 헌정을 수호하려는 국민들 사이에 그어지게 되었다.

3.민주주의 수호운동

3.12 탄핵소추안 가결직후부터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미선, 효순의 사망으로 인한 소파개정운동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한국에서 대중적 항의 행동의 전형으로 되었다. 초기에는 집회신고 없이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으며 며칠이 지나서부터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대중이 직접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예외적인 경우이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의회에 내보내는 것이므로 사회각층의 요구가 의회를 통하여 수렴되고 사회갈등이 의회를 통하여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의체제가 주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움직일 때에는 주권자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광장의 정치에 복귀하게 된다. 혹자는 이를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비판하지만 일정한 상황에서는 대중의 직접적 항의행동이 필요하다. 이는 대의민주주의가 절대적인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사태와 같이 의회가 주권자의 70%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나아가 권력에서 축출하려고 하는 경우라면 국민들이 광장에 나올 수밖에 없으며, 종국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헌법질서 수호를 위한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

2002년 프랑스 대선과정에서 극우정당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하였을 때 ‘공화국을 지키자’는 기치 하에 좌우의 모든 정치세력과 시민들이 광장에 결집하고 결국 극우정당의 당선을 저지한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는 대중의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금 진행되는 탄핵무효를 위한 국민운동은 다수의 폭력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수구정치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 헌법질서를 지키자는 헌법수호운동이다. 87년 6월 항쟁이 주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한 반민주적 헌법을 폐기하고 국민주권을 실현하자는 운동이었다면, 2004년 3월의 대중행동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헌법의 고유 가치를 지키자는 헌법수호운동으로서 역시 국민주권을 실현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해결하지 못하였던 친일매국 행위와 친일잔재에 대한 청산,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정상적 정치로의 진입, 국민소환제와 같은 국민주권의 실질화 등의 과제가 국민 앞에 제기되고 구체적 실천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4.맺는 말

탄핵사태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양하다. 대구참여연대 회원들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우리 단체가 의사결정을 하여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대구본부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나 회원들의 생각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생각이 공론의 장에 표현되고 토론되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총선시기 동안 탄핵반대운동은 호흡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총선 이후에는 내용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탄핵소추로 초래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무효를 넘어 우리사회가 제대로 된 ‘공화국’이 되기 위하여 해결하여야 할 과제들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2004년 3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뜻을 모아내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끝-

글_ 성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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